숨그네 (양장) - 10점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문학동네




 200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언어로 만든 예술품이라는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문장은 간결하고 담담하다. 그럼에도 묘사는 풍성하게 간결한 문장 안에 담겨있다. 번역에 아무리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알 수밖에 없다. 마치 솜씨 좋은 조각가가 세밀하고 정교하게 깎아낸 조각품 같다.

 이야기는 세계 2차대전,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던 루마니아가 러시아에 항복하면서 급작스레 나치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 때 러시아는 나치 독일에 의해 파괴된 러시아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의 독일 젊은이를 요구한다. 주인공 레오도 예외없이 강제수용소로 가게 될 명단에 들었다. 17세 소년으로, 동성애자라는 숨막히는 '침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기에 내심 러시아행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5년이라는 세월은 녹록치 않았고, 기억은 평생을 그와 함께 숨쉬며 동반한다. 숨그네는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후, 이 때를 회상하고 있는 레오의 이야기이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체험을 고백하고 있는 이 글이, 어떤 이에게는 난해한 산문으로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은 시다. 시는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머리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서사구조나 플롯이 아니라 장면을 따라간다. 자신하건대, 소리 내어 읽어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면 아무리 두꺼워도 한나절이나 이틀이면 술술 읽어 내리는 나도, 이 작품만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다. 생소한 말은 물론이거니와, 배경지식이 전무한 어떤 것들을 말하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작가 본인이 '침묵의 말'로 글을 풀어내고 있는 까닭이다. 집중이 되지 않으면 소리 내어 읽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을 소리 내어 읽다가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졌다. 곁에서 읽어주는 글을 듣고 있던 이가 너 이상해, 왜 사실 표현을 읽는데 울려고 그래 하며 뜨악한 얼굴을 한다. 그러나 이 숨막힐 듯 아름다운 언어들이 말하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처참한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더욱 비극적이다.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작가 자신이 밝힌대로, 처참한 현실의 비극은 시의 옷을 입었다. 시의 언어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빛을 발하고, 살아 숨을 쉬고 생동한다.

 눈치 챘을 지 모르겠지만, 모든 대화는 따옴표 없이 나열된다.  이런 말들은 머릿속에서 소리가 되지 않고, 울림으로만 남는다. 물음표가 없는 물음.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풍경의 기억과 맞물린다. 작가가 사용한 서술 방식은 그가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의 의식이 흐르는 대로 단편적인 기억을 풀어놓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각 장의 제목들은 기호이며, 기표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언제까지나 입하늘 안에 담아두었던, 침묵의 언어를 말한다.

 Atemschaukel 은, Atem+Schaukel, 숨(breath)와 Schaukel(swing) 의 합성어이다. 풍문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숨 쉬는 모양을 그네의 움직임에 빗대어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라고 한다. 여기에 필자의 자의적 해석을 더한다. 숨그네와, 숨그네를 타는 배고픈 천사. 입천장-입하늘(cerul gurii)-천사, 채워지지 않는 허기=수용소. 도식은 분명하다. 작가는 말놀이를 하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배고픔과 향수이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이 후 60년 동안, 나는 굶주림에 대항해 먹는다.p29'
 그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수용소에서의 기억들, 얽히고설킨 기억의 파편들이다. 이 기억은 숨을 쉴 때마다, 불시에 그를 찾아와 그를 괴롭힌다.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기억들은 갔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아니, 애초에 저 입하늘에 줄을 걸어두고 맴돈다. 결코 그를 떠나지도, 또 그가 떠날 수도 없다. 마치 그네와도 같이, '그는 머물러 있으면서도 다시 오겠다고 말한다. -배고픈 천사에 대하여, p163' 
 흔히 트라우마(trauma)로 일컬어지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어떤 충격적인 경험 후에 일어나는 정신적 외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는 대중적인 용어로 자리잡아, 어떤 개인에게 각인된 아픈 기억을 가리키는 정도로 쓰이기도 하다. 이 용어는 프로이트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히스테릭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잠재의식 속에 억눌린 기억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억을 억압하는 기제로 히스테리가 나타난다는 것을 관찰해낸 후, 이 기억을 마음에 생긴 상처(외상)이라는 뜻에서 트라우마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숨그네의 주인공 레오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환자들이 보여주는 증상과 일치한다. 반복되는 꿈(충격의 재경험), 정상적인 감정반응의 소실, 대인관계 능력 소실(가족들과의 소통 단절). 특이점은 그가 자신에게 고통이 되는 기억들로 회귀하려고 하고, 때로는 그 때를 그리워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배고픈 '천사'라는 표현은 이를 반증한다. 마치 그를 수용소로부터 구원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보물에 대하여 라는 장에는 레오의 복잡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있다. '그 사이 나는 내 보물들에 나 거기 머문다라고 적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용소는 머릿속에서 자신을 확대시킬 거리를 확보하려고 나를 집으로 보냈다. 고향에 돌아온 후로 내 보물에는 나 거기 있다는 물론 나 거기 있었다라는 말도 적혀 있지 않다. 내 보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보물에 대하여, pp.328-329.' 그는 결코 이 기억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내 보물들을 육십년이 넘도록 사용하고 있다. 그것들은 허름하고, 집요하고, 은밀하고, 혐오스럽고, 잘 잊히고, 쉽게 용서하지 않으며, 닳아도 새것이다. p.329.' 잊어버려야할 것같은 이 고통의 기억이 이제 그에게는 보물이다. 고통의 기억은 늘 현재에 있다. 그와 동행하며, 그의 삶을 괴롭히고 동시에 위로한다. 회한과 연민이 동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고통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벗어나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그것들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 기억에 머물 때에 잠시간 현실을 도피할 안식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책임지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데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비련에 처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 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 고통의 기억들 역시 자신을 있게 한 삶의 역사가 아닌가. 쉽게 용서할 수 없어도 끌어안고 갈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독일어 원서로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독일어를 배울 때, 독일어의 명료함과 적확한 묘사에 매료되었더랬다. 움직임의 생생한 표현이 인상깊었다. 이 작품에 나타난 언어, 작가가 풀어내는 낱말 상자들 속의 언어가 어떻게 살아 숨쉬고 있는지는 쓰여진 원래의 언어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보석과도 같은 시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1. | 2010.12.28 16:29 | PERMALINK | EDIT | REPLY |

    비밀댓글입니다

  2. | 2012.11.24 19:53 | PERMALINK | EDIT | REPLY |

    비밀댓글입니다

Write your message and submit
« PREV : 1 : ··· : 68 : 69 : 70 : 71 : 72 : 73 : 74 : 75 : 76 : ··· : 81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