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 - 10점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동문선
 
이 책의 필요성은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담론은 아마도 수많은 주체들에(누가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의해 말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주변의 언어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또는 무시되고 헐뜯어지고, 웃음거리가 되어왔다.
권력에서 단절되었을 뿐아니라, 그 메커니즘(과학/지식/예술)과도 단절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담론이 모든 군생 집단 밖으로 추방당하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비실제적인 것 안으로 표류하게 되면, 그 때 그것은 긍정의 장소가-비록 미미한 것이긴 하지만-되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 긍정은 바로 여기 시작하는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서문 중-

 먼저 서문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부분은 다른 부분입니다만. 어쨌거나 말하자면 이 글은 독자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사랑' 에 대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책의 분류가 인문학이나 정신분석학으로 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고려해야겠지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결코 사랑에 대한 수필이나, 철학적 담론이 아닙니다. 바르트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정신현상학이라든가 언어 기호학 그리고 구조주의 같은 학문들에 어느 정도의 식견을 갖추어야만 그 진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괴테의 역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고전 소설을 가지고 행해진 세미나에서 강의된 바르트의 글쓰기 산물-그 자신에 따르면 소설적인 텍스트-입니다. 사랑에 관한 많은 위인들의 언어들을 '가지고 와서' 그의 글쓰기 안에 '묶어' 그 자신의 언어로 풀어놓습니다. 그 자신은 이를 두고 [집필자]라는 말을 사용했지요. 그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해체하고 조립합니다. 그런 점이 롤랑 바르트의 글을 독자들이 어려워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지요.
 저는 바르트의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그의 글이 가지는 시적인 정제, 구조적 아름다움(사랑의 단상은 알파벳 순서로 키워드를 잡고 시작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섬세한 감각. 이것은 직관으로 나오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학문적 토대가 탄탄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치열한 정신분석학적 바탕을 소설적인 텍스트로 풀어냈다는 것이 그의 글쓰기가 가진 놀랍고 탁월한 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 책을 이해하는 포인트를 짚으라고 하면- 이 단상의 서문과 본문 첫 머리에 세운 한 줄의 메세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lover)이다.' 사랑이라는 담론은 언제나 주체적이기 때문에 '나'를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과, 이 담론은 항상 '당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글 중 하나에 이것이 좀 더 쉽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타자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사랑하는 자인 주체는 기호학자로서 미묘하고 복잡한 다양한 언어들에서 사랑이라는 긍정의 기호를 찾아내려 하지만, 사랑받는 자(사랑의 대상)는 항상 사랑하는 자의 상상계에서 타자이기 때문에 그 요구는 좌절되고 맙니다. 그의 텍스트 안에서 사랑하는 자는 항상 좌절하고, 절망하고, 상실을 경험합니다.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사람들에게 '지난 사랑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평을 많이 듣는데, 말하자면 그런 독자들은 바르트가 책에서 표현해낸 소설적 텍스트의 주인공인 '나'가 되는 것이지요. 

 책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사랑의 단상」에 실린 글 중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던 글, 원 출처는 모른 채 누구든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제목입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같은 제목을 사용한 책을 우리나라 작가가 발표하기도 했고, 20대 여성분들이 좋아하는 음악가 에피스톤프로젝트도 이 글에서 모티브를 얻어 같은 제목의 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솔직히는 그다지 관련성이 있다고 못하겠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연민 compassion. 사랑의 대상이 사랑의 관계와는 무관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행해하거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거나 보고 알 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한 격렬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주1)

1. "그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그를 느낄 때 -쇼펜하우어가 연민이라 부르는 것, 혹은 더 정확히 말해 고통 속에서의 결합, 고통의 일치라 할 수 있는 것-우리는 그가 자신을 혐오하면(파스칼처럼) 우리 또한 그를 혐오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환각에 시달리거나 미칠까봐 두려워한다면, 나 또한 환각해야 하고 미치광이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이 어떠하든간에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기에 나 또한 동요하며 괴로워하나, 동시에 냉담하며 젖어들지 않는다. 나의 동일화는 불충분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이긴 하지만(그가 내게 걱정거리를 준다.), 불충분한 어머니이다. 내가 실제로 그를 보살필 수 있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진정으로 그 사람의 불행에 동일시하는 그 순간에, 나는 그 불행에서,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일어났으며, 이렇듯 스스로 불행해진 그는 나를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읽기 때문이다. 나와는 무관한 이유로 해서 그 사람이 그토록 괴로워한다면 그건 내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고통이 내 밖에서 성립되는 한, 그것은 나를 취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 그리하여 하나의 역전이 내도한다. 그 사람이 나를 제쳐놓고 괴로워하는데, 왜 내가 그 대신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불행이 나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하는데, 왜 나는 그를 붙잡을 수도, 그와 일치될 수도 없으면서 그의 뒤를 숨가쁘게 쫓아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 타자의 죽음 뒤에 홀로 살아 남는 그 순간부터 모든 주체의 입에서 나오는 저 억압된 말, 살자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3. 그러므로 나는 그를 압박하지도 내 정신을 잃지도 않으면서 그와 더불어 괴로워하리라. 아주 다정하면서도 잘 감시된, 애정에 넘쳐흐르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이 처신에, 우리는 부드러움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연민의 "건전한"(개화된, 예술적인) 행위이다. (아테는 미망의 여신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아테의 부드러움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발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땅을 디딜 둥 말 둥하다고).

주1) 이 단상의 제목 "그 사람이 아프다"는 프랑스어로 "J'ai mal a' l'autre"이다 이 말은 원래 신체적인 통증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나 여기서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야기되는 아픔을 마치 자신의 육체의 그것처럼 느끼는 사랑의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듯하다. 욱이 이 표현은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슐레의 선례를 따른 것이다.
 미슐레 Michelet : "나는 프랑스가 아프다 J'ai mal a' la France." 미슐레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학자로 그의 방대한 <프랑스사>는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된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문학과지성사, 1991, pp.83-85 


 제가 한참을 우울해 하고, 이유 없이 힘들어하니까 그 사람이 저에게 말하더군요. "제가 당신 옆에서 아무 소용이 없네요. 제가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닌거예요." 그러면서 불같이 화를 내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나의 연인이기 때문에 내가 당신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인데,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큰 힘이 되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걸까, 하구요. 저는 그사람의 냉정함 앞에 절망하고 저이는 나를 그다지 마음에 두고 있지 않는다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그사람이 너는 우울하기로 작정을 했냐고 무섭게 다그치더니, 처음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힘들어하면 내 마음도 너무 아프고, 힘들다구요. 그러고 나서 바르트의 이 글을 읽으니 그사람의 말을 알았습니다. 그의 언어 안에 담긴 내면의 언어가 풀린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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