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콘느를 처음 찾아 들었던 것은 중학교 때, 소리바다가 망망대해를 자랑하고 있을 무렵.
마음이 가난해서 가슴 속이 메마르고 갈라지던 그 때 내 마음의 위로가 되어 주었던 샤콘느
지금도 울적한 날이나 눈물이 나지 않지만 속이 타들어갈 듯 쓰라릴 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면 나 대신 울어주는 샤콘느를 듣곤 한다.

 샤콘느(chaconne)는 바로크 시대의 변주 형식으로 16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온, 화음 진행을 기본으로 하는 느린 무곡이다. 통상 3박자, 장조이며 이들 기본 음형을 변주하여 전개하는 곡이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으로 알려진 곡 샤콘느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두고 말한 것이고, 바흐의 샤콘느에는 '영원으로의 끝없는 비상'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지만- 나는 바흐의 샤콘느나 비탈리의 샤콘느나 모두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 말하고 싶다.

 샤콘느는, 글쎄 춤곡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치면 당시엔 훨씬 그 수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유명한 것은 바흐와 비탈리, 그리고 바흐의 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부조니의 것까지 3가지 정도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샤콘느 연주는 4가지다.
바흐 샤콘느 무반주 바이올린
바흐 샤콘느 부조니 편곡 피아노
비탈리 샤콘느- 하이페츠 연주
비탈리 샤콘느- 장영주 연주

 

비탈리는 소리내어 우는 슬픔, 바흐는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우는 슬픔이라고 감히 말한다.

처음 샤콘느를 알게 되고 4개의 연주를 들은 후

비탈리의 연주만 수십번을 반복했다.

장영주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질리면 하이페츠의 오르간 반주에 맞춘 연주를 들었다.

사실 두 연주자 모두 뛰어 나기 때문에 누가 더 낫다고 하기 보다는, 이런 거다.

이 부분은 이 연주자 쪽이 좋았고 이 부분은 다른 연주자의 표현이 좋다. 그런 느낌?

 

비탈리의 연주는 듣고 있다보면 슬픔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가슴 속에서부터 눈물이 솟구쳐서 얼굴이 찡그려지는데,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혼난 후 서러워서 눈물이날 때의 그 감정이랄까

나도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짓게 되는 바람에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가 된다.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 정말로 나도 모르게.

어떤 날은 곡을 듣는 도중 한참을 통곡하면서 울기도 했다.

 

그런데ㅡ 어느 순간부터는 바흐의 샤콘느를 더 즐겨 듣게 되었다.

부조니의 샤콘느 피아노 연주는 악보를 구매해서 좋아하는 부분을 외우려고까지 했다.

바흐의 샤콘느를 듣고 있자면 그 깊은 수면 아래에까지 잠겨내려가는 슬픔이랄까

......................정지용의 유리창 같은 느낌이다.

몇 번 들을 때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는데, 곡을 완전히 외워 읽으면서 들었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정표현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되기 때문인지

'카타르시스' , 랄까 바흐의 편을 들게 된 것 같다. 

 

- 요한 바흐의 사진


피아노를 치면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는 쇼팽이었고 제일 싫어했던 사람은 바흐였다!!

초등학교 때, 절규하고 싶을 정도로 나를 괴롭혔던 바흐 인벤션이랄까 ㅡ ㅡ

'바흐는 딱딱하고 답답하고 지나치게 계산적이다.' 라는게 내가 가진 바흐에 대한 편견이었다.

(시실리아노와 샤콘느로 그 편견은 완전히 깨졌지만)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면 바흐를 사랑하게 된다고 하던데.

나도 바흐가 좋아진 걸 보면 이제는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걸지도 ;

 

임동혁의 피아노연주에 미쳐있을 무렵,

그의 인터뷰가 개재된 인터내셔널 피아노와 더 피아노라는 잡지를 사다 읽었었다.

그 때까지 그런 잡지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임동혁의 인터뷰를 계기로 인터내셔널 피아노를 읽다가 바흐 부조니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바흐의 샤콘느는 원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다.

그 곡을 부조니는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다.

 

바이올린은 현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처음 마찰시의 음이라기보다는 한 음의 지속이 길고

피아노는 타현악기로, 줄을 때리기 때문에 음의 지속이 짧고 타현 당시의 음이 강하다.

 

바흐의 샤콘느를 피아노 곡으로 편곡할 때, 가장 중점이 되는 것이 바로 이것으로

피아노로 바이올린과 같은 현의 느낌을 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현악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도 원곡의 감성을 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연주자 불명인 부조니의 바흐 샤콘느를 수십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느낀 것도 그렇지만

여느 바흐의 바로크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그러니까 페달이 없는 쳄발로(하프시코드) 연주의 피아노곡들과는 다르게

부조니의 샤콘느는 상당히 '연결된'느낌을 가지고 있다.

스타카토마저도 4/3 정도의 음을 짓이기면서 최대한의 여운을 가지고 음을 이어가는 듯한!!

그러나 물론 바이올린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의 레가토도 사용되고 음의 구분도 확실하지만 그마저도

단계를 밟아가며 이동하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가진 샤콘느 악보도 상당히 답이 안나온다.

뭐랄까 막막하다.

 

사실 최근 임동혁의 바흐 연주회 때 부조니의 바흐 샤콘느를 연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음원을 구해다 들어봤지만...................................................................................

왜일까 기존에 정석이라고 생각해온 연주가 있기 때문일까

그의 현란한 테크닉과 아름다운 음색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다.

왜냐하면............... 그 곡은 바흐의 것이 아니라 부조니가 '편곡한' 거니까.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깐.............페달이 없어서 메조스타카토의 느낌으로 연주되는 챔발로(하프시코드)가 아니라!!

페달을 사용해서 음의 길이와 중압을 살려낼 수 있는 피아노.........................

아니 뭐 .........임동혁의 곡 표현이 천재적이라고 생각하고 곡 해석도 마찬가지겠지만 ㅜㅜㅜ

 

가볍다. 가볍다. 더 음을 짓눌러 줘야 할 것만 같다. 이런 느낌

아니다 그래도 임동혁의 연주는 최고다 ㅜㅜㅜㅜㅜ 라고 말하고 싶어도

너무 급해 , 아니야 여기선 조금 더 늘여 줘도 괜찮아. 

어?  여긴 정말 너무 좋다!! 역시 임동혁 나를 실망시키지 않아!!  ........... 이런 패턴이 계속 된다. 

 

확실히 바흐의 샤콘느를 무반주 바이올린으로 들었을 때와, 부조니의 곡을 들었을 때

곡의 감성 자체는 닮아있다.

표현 방식의 차이인데, 부조니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회자되는 것을 보아도,

그의 편곡이 탁월했음을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난 사실 ............ 부조니의 것을 더 좋아하지만    하 하 하 .

 

 

 

음악적 감수성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고, 감상을 제대로 한다는 것도 나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클래식에서 받는 감동, 감정, 그 모든 느낌들은

모든 사람들이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난 후의 느낌, 혹은 이야기를 읽은 느낌과 흡사하다.

 

눈에 보이거나, 머리로 생각하도록 되어 있는 '이야기'의 개념은 아니지만

음의 흐름이 가지는 '이야기'라는 게 있다. 

 

 

그래서 클래식이 좋다.

음악이 좋다.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 생각한 지 오래지만 88개의 건반이 그립다.

더이상 손이 마음먹은만큼 움직여주지 않아도

그래도 연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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