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 8점
공지영 지음/한겨레출판

 

 

 

 

 어디서 본 것 같은 이야기를 했고, 소설의 구성은 억지로 짜맞춘듯 어설펐고, 문장도 군데군데 구멍나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것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신과 함께 가라 같은 것들처럼 열정과 환희에 흔들리는 젊은 수도사의 사랑과, 학문에 대한 사랑, 혹은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들이 너무나 전형적이어서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도사들의 삶이라는 것이 그것뿐인가 싶어 조금은 아쉬웠다. 이건 어디까지나 신학생으로서 개인적인 아쉬움.

 '높고 푸른 사다리' 라는 것은 추측건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야곱의 사다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은데,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을 가지고 글을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야곱의 사다리가 원래 가지는 의미는 작가가 그려낸 '신에게의 도달', 혹은 '영원을 향한 갈망' 혹은 '구원' 같은 것과는 다르다. 평신도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성경 마음내키는 대로 읽고 받아들이기인데, 이것도 비슷한 격이 아닐까 싶다. 이부분은 전적으로 신학도와 목회자에게 책임이 있다. 뭐 그것이 마리노스 수사의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대로 배에서 내려진 그물이 구원의 사다리처럼 보였다는 맥락이라면 야곱의 사다리와는 상관없겠지만, 이미지매칭이 바로 되니까..  어쨌거나 나는 읽으면서 결말이 왜 이따위야.. 했다. 여러 이야기를 짜집기하느라 애쓴 흔적이 보였달까. 이를테면 왜관 베네딕토 수도회나, 마리노스 수사의 이야기나, 가톨릭계에서 흔히 들려오곤 하는 신부와 어느 순정한 처녀의 풋사랑, 수도사의 종신서원 문제, 수도사의 비행, 사회문제에 뛰어드는 사제들,.. 다룰 수 있는 소재 모두를 엉겨 놓은 것 같았다.

 또 하나 마음에 안드는 건, 이 작가가 죽음 없이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사람 같아서다. 왜 굳이 인물들을 죽이는 걸까. 죽이지 않으면 스스로 죽고. 죽지 않으면 극적이지가 않아서? 생각했던 대로, 나는 공지영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지지도 않는다.

 '신에게의 도달'이나 '영원을 향한 갈망' '구원'을 말하기에는 이 글은 부족하다. 어쩌면 신의 섭리 같은 것을, 혹은 수도자로서의 사명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요한의 종신서원은 석연찮다. 결국 요한 수사가 자신의 길을 다하게 된 것은 그 친우 둘의 너무나 황망한 죽음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제 사명이 사제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하는 건, 무엇 때문에? 솔직한 심정으로, 한 모자의 이야기로 연결된 감동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요한 수도사와 소희의 로맨스가 한 가운데 놓여 있으므로, 이것은 정당한 비판은 못 될 것이다. 이게 만약 로맨스 소설이라면 말이다. 단순히 사제도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작업이 아직도 성도에게는 이질적인 이야기이니 이정도만 해도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다룬 소재의 특수성 만큼 깊이를 바랐다. 최소한 오스 기니스의 '소명' 같은 책의 고뇌와 갈등이 더 드러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제가 되는 것과 목회자가 되는 것은 물론 조금 다르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 앞에 서는 우리의 마음, 그의 길을 가겠다는 우리의 마음은. 사랑'보다', 사회의 부정부패를 철폐하겠다는 열정'보다'가 아니다.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고, 나 자신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종신서원 때에 수도사들은 제단 앞에 완전히 엎드린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또 당신만을 바라보고 당신만을 구하겠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목사안수도 마찬가지다. 신학생들의 모든 고민은 바로 우리가 믿는 유일한 한 분 하나님, '신'이다. 신에게 다가서는 것, 신의 뜻을 따르는 것, 세상에 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 그 분 안에서 죽고 그분과 함께 살아나는 것, 그리하여서 그의 사랑을 죽기까지 따르고 전하는 것. 그러므로 내 안에 나는 없고 오직 그 분만이 사시는 것. 그런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는 길의 무게다. 존재 전체를 거는 무게. 
 사랑, 지혜, 의, 이 모든 것 위에 그 분이 계신다. 그것은 말하자면,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런 것들 '보다도' 당신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이다.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주와 동행하는 것은 책임이나 의무나 결심 같은 것이 아니다.  ..

 

 

 어쨌거나 공지영의 소설은 작가가 뿜어내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비상한 서술이 유일하고 독보적인 장점이다. 철저한 고증과 관찰을 바탕으로 공간을 그리고, 인물을 형성한다. 추측건대 이 소설의 배경은 왜관 베네딕토수도원일 것이다. 유명한 마리노스 수사의 이야기를 활용했다. 뿐만아니라 실제 신학생들의 고민, 성과 사랑, 지혜, 정의, 죄, 교회의 권위와 전통, 성서와 현실 등 우리가 직면하는 많은 문제들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인물들의 대화 안에 녹여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추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지 신학생들의 고민과 질문, calling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신이 없는 세상에 신을 마주하고 선 모든 이들의 고민과 절망과 절규가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길을 잃은 것 같다. 돌아가야 하나. 돌아갈 수는 있나.

요한 수사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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