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은 1984년 통일 전 동독을 배경으로 한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 동독의 모든 사람들은 슈타지(동독비밀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영화는 정보국 감시원 비즐러와 동독 예술인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도청하는 비즐러.

 

비즐러는 정보국 감시원으로 도청을 업으로 삼고 도청을 통해 동독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내는 냉철한 인물로, 우연히 성공한 극작가 드라이만을 도청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뮤즈인 배우 크리스타

 

 

 

 

영화의 시선은 비즐러가 ‘듣는 것’을 따라 움직인다. 비즐러가 도청할 때 쓰는 헤드폰을 낀 채 드라이만의 집의 도면을 바닥에 그리는 장면과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 크리스타의 집으로 몰래 잠입하여 비즐러가 여태 소리로만 들었던 그들의 삶의 자리에 손을 대어보거나,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하는 장면, 그리고 그 때 가져나온 드라이만의 브레히트 시집(동독에서는 금서)을 읽는 장면, 또 그들이 침실로 가면 비즐러 역시 도면 상 침실로 표기된 곳에서 도청하는 장면. 나에게는 그런 장면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비즐러는 이제 그들의 삶을 ‘보는 듯이’ 듣는다. 그리고 그의 ‘삶’을 훔쳐와 살아(Leben)도 본다.

 

 

 

 

드라이만이 생일 선물로 받은 브라히트의 작품을 드라이만의 아파트로부터 훔쳐와 읽고 있는 비즐러

 

 

‘타인의 삶’의 관찰자로서, 그는 점차 그들의 삶에 매료되고 그들의 갈등과 고민에 깊이 동화되기 시작한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열망과 동료애, 고뇌를 지켜보면서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동독의 체제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회의를 느끼게 된 비즐러는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되고, 드라이만과 그의 동료들을 누구도 모르게 돕기에 이른다.

 

 

 

 

 

 

 

2년 뒤. 드라이만의 새 작품이 발표된다.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좋은 사람의 소나타

감사하는 마음으로, HGW XX/7 에게 헌정.

 

 

 

 

 

 

"Geschenkverpackung?"

선물 포장이신가요?

"Nein, Das ist für mich"

아니요, 나를 위한 겁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예전에 나는 싸이월드나, facebook 같은 곳에서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 중에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삶을 집착적으로 훔쳐봤다. 내가 볼 수 있는 현실과 그들의 실제 삶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간과한 채로, 그저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기웃거리고 내가 누리지 못하는 어떤 삶들을 꿈꾸듯이 들여다보았다. 늘 나의 삶을 경멸하고, 스스로의 삶을 돌보지 않았으므로 내 생이 메말라 갈수록 더욱더 타인의 삶에 몰입했었다.

 

누군가의 삶을 구경하는 일에 싫증을 느끼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로 며칠 밤을 지새우는 일도 허다했다. 그렇게 타인의 삶에 빠져들어 있으면 나는 나를 잊을 수 있었다. 귀찮고 하찮게만 보이는 나 자신의 영상을 지워버릴 수가 있었다. 그것이 주는 피상적인 위안이 나에게는 달콤하기만 했다.

 

 

그것은 지금도 비단 다르지 않다. 여전히 열등감 덩어리에,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고,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는 변명으로 스스로 위안하는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자학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이 나를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습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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