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여신
감독 쿠마자와 나오토 (2006 / 일본)
출연 이치하라 하야토,우에노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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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에 수평의 무지개가 뜨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8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을 그려낸다.

제목이 무지개여신이니까, 영화도 7장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8장이었다. 왠지 배신당한 기분

영화는, 액자식 구조에 이야기가 순환해서 돌아온다고 할까-

과거와 현재를 미묘하게 이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애를 다룬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감정적으로 짠한 것은 오지만 마땅히 할 말은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 리뷰도 쓰다 말다 한게 벌써 작년.....

로맨틱코미디나, 연애드라마를 다룬 영화는 그냥 생각없이 보는 게 제일 좋은 것도 같다.

각설하고.

무지개여신을 통해서, '남녀 간에 친구가 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찰해보자.

아 왠지 말도 안되는 대학시험 같아, 이상한 주제 던져놓고 B4 용지 2시간 내에 앞뒤로 가득채우기 같은 류의.

 

나에게도 여러 이성의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을 한번도 '남자'로서 생각한 일이 없고

그 아이들도 나를 '여자'로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연애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연애감정을 품었는 지 품지 않았는 지 드러내지 않으면 누가 알겠는가

피상적으로 연인이 아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 그걸 친구라고 하지 않나 보통?

 

때때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특별히 가까운 누군가를 마음에 품게 되었을 때에.

말하지 않으면 이대로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말하면 자칫 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관계가 이전과는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고백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주저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그러다가 서로 멀어지고 - 멀어지고 결국은 친구사이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남이 되어버린다.

운 좋게 연인이 되었다해도, 이별 후에 남보다 못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삶에서 좋은 인연을 잃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남녀 관계는 어렵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뭐 나로 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나는 좀 특이해서인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싶으면 그냥 이야기해버리는 편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그 사람이 알아주길 바래서 이야기한 것 뿐,

우리 사귈래요 한것도 아니고, 내가 널 좋아하니까 당신도 날 좋아해 어서!  하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 걸

 

요즘 사람들은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면서 '선배 좋아해요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하면

그 선배는 '미안, 난 아직 누군가를 사귈 마음이 없어' 혹은 '미안하지만 난 싫어 포기해' 하고 대답하는 것을

무슨 수학의 정석처럼 생각하는데, 좋아한다면 사귀자는거니? 생각이 틀려먹었잖아-

애초에-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본인에게 속한 권한이다.

좋아하는 상대방이라 해도 그것을 통제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저 고맙게 받아주면 될 일이다. 달라져야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받은 감정을 보류해두고 어장관리 혹은 마지막 보루처럼 두고 상대방을 '희망고문'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서로의 감정과 관계와 태도를 존중한다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일은 참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이지 않는가. 자기 좋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고백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사랑 받을 줄을 모르거나, 받은 사랑에 적절한 표현을 할 줄 모르거나

앞으로의 관계가 변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일 뿐인 것이다.

  

 

 아오이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회상.  



아오이와 함께 일하는 동료를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끊질기게 하는 키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이 장면을 굳이 여기다 넣은 데는 이유가 있다.

섣불리 저런 말을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농담처럼하는 애매모호한 말들이 물론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때때로 어떤 사람에게는 기대를 갖게 하거나 마음이 아리송해지게 되니까.

아니 뭐-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은 안그렇겠지............

저런 말에 티는 안내지만 속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모습이 아오이와 겹치는 바람에 그저 욱했다.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아오이와, 무지개를 보는 내내 그 손을 놓지 않는 키시다

 
어쩌면 이미 아오이는 키시다를 마음에 품었을 지도 모르겠다. 여자에게 왼쪽 네번째 손가락의 의미는 사랑이다.

그 손을 자연스럽게 내밀어 반지를 끼워달라 하는 것은 이 사람이 편해서가 아니다.

마치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반지를 받는 것과 비슷한 심정은 아니었을까.

 


두 사람은 친구가 되고,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의 일을 돕고 많은 일을 함께 한다.

  

 

 언제나 아오이는 키시다의 곁에서 도움이 되어준다.

고백을 위한 편지를 쓰는 일도, 싸움에 휘말려서 다친 얼굴에 약을 발라주는 일도,

망설이는 키시다의 등을 밀어서 키시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게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심지어는 취직하지 못한 것을 고민할 때에 일자리까지 소개시켜준다.

아오이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있었는 지는 확신할 수가 없지만 -

적어도 아오이가 키시다를 친구로서만 좋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기에, 그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의 마음이 아픈 것쯤은 아무렇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줄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고맙다해주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충족되기 때문에.

 


"...그래서 가지 말라고 하면 분명히 안 갈 것 같아.

 쭉 곁에 있어달라고 하면 뭐든 지 다 포기하고  쭉 곁에 있을거라고 생각해 "

"누구야? 그 실연의 상대라는게"

"말 안해"

"일본에 있으면 되잖아"

"일본이구나, 자기 곁이 아니라"

 

아오이의 마음을 내가 너무 잘 알아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여자들이 다 그런 것인지, 나도 아오이와 같은 것인지 -

한 마디 말로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면서 눈치 채 주기를 원한다.

말 끝이 흐려지거나 애매모호한 어투로 이야기할 때나,

아니 사실은 모든 말 하나하나를 신중히 하면서 그 안에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못 알아들을 것을 알면서도- 혹시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른 척하고 싶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못 알아들은 듯이 이야기하는 것 뿐.

 

첫키스를 허락하거나, 포옹하도록 내버려두거나, 장난스러운 프로포즈를 듣거나.

하는 그 모든 것들이 키시다라서 괜찮았다는 것은 -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이 이유겠지.

문득 생각나거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것. 

마음이 답답하고 힘든 일이 있어서 기분이 최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 하나로 웃음 짓는 것은

분명 사랑인데.

 

 

 "우유부단한 점도 좋아. 근성 없는 점도 좋아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점도 좋아

 둔감한 점이 좋아. 웃는 얼굴이 가장 좋아"

 

 

키시다가 보낸 수평무지개의 사진을 핸드폰 메인에 저장해두었던 아오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유품으로 남은 것은

그 예전 키시다가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주었던 만엔반지와, 키시다를 향한 마음을 적은 편지.

 

아오이의 마음에 키시다가 눈물 흘리는 이유는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아오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후회스럽고 안타깝고 괴로워서라고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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