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8일

Posted 2014.06.07 16:36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정작 문제는 이렇다. 이제 막 샘솟은 이런 감정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그런데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들'(그런데 '그들'은 또 누구인가)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하고 냉소적이 되며, 무감각해지는 것이다.(p. 153)'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p. 154)'

 나는,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이 뻔뻔한 연민들이 역겹다. 입을 열고 떠들기는 쉽지.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것이 목숨을 걸고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고에 비하면 쉽지. TV 보도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우연한 포착'을 기대하는 듯하다. 그것이 생존자이건 사망자이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그 마음에는 수전손택이 지적한 대로 어떤 변태적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알 권리 좋아하시네. 집 근처에서 불이 나도 구경가고 도로 가운데서 사고가 나도 제 갈길을 멈추고 사건 좋은 자리를 잡아 죽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던가. 천박한 호기심이다. 이것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연극이나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 같은 허구가 아니다. 스펙터클보다도 더 사실인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소망한다고 해서, 사실이 바뀔 수는 없다. 전문가들을 불러다 놓고 들을 얘기를 다 들었으면서, 어쨌든 에어포켓이 있긴 하니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는 얘기군요. 하고 좋을대로 짜깁기하고 부풀리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입이 쓰다.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할 말도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일말의 희망을 버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헛된 기대가 유족들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길까 염려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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