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4일

Posted 2014.06.05 16:36

 사랑은 부재하고, 나는 함께 이야기하던 풍경에 남았다. 멀리 파도소리 들리고, 공기 쾌청하니 바람 산들하고, 사각거리는 침구에서 벗은 몸으로 종일 뒹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만 있어도 좋을 것이라 했었다.

 우리 같이 이야기 했던 곳. 나는 그곳에 왔고, 지금 나는 홀로 남았고,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이를 그렸다. 지금 내 곁에 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우스워져서, 술을 들이켰다. 순결한 바다에 건배. 이 아름다운 날에 건배. 온전히 혼자 되었음에 건배. 취기도 없이 쉬지도 않고 잔을 비웠다. 들큰한 끝물 포도의 향이 입 안에 감돈다.

 우습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만일 너와 함께 이 곳에 왔다면. 너에게 이 곳에 올 용기가 있었을까. 체크인을 하고,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섰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는 너와 함께 왔어도 트윈베드를 잡았을 것이다. 갈등하는 너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너를 놀리고 그 복잡한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너를 보며, 속으로 조소했을 것이다. 쌀쌀맞은 내 태도에 너는 또 자존심이 상하겠지. 퍼붓던 너의 입맞춤을 떠올렸다. 나는 밀어내는 척 너를 내버려두곤 했다. 잠시간이라도 니가 망설이는 듯 보이면 나는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바다로 산책을 나갔다가 식사를 거나하게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너와 무엇을 했을까. 너는 술도 안 마시는데. 나는 너를 내버려두고 욕조에 반시간 몸을 담글 것이고, 가운을 걸치고 파우더룸에서 머리를 말리고, 화장수를 얼굴에 토닥였을 것이다. 종일 네 그림자는 이런 식으로 나를 따라다녔다. 파도에 너를 흘려보내야지 하고 너를 띄워보내면 파도가 모래사장으로 돌아오듯이 너는 자꾸만 내 마음을 두드렸다. 곁에 일행을 두고도 말이다. 

 그게 꼭 너여서일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니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냥 나는 임의로 대상을 세워둔 것이다. 나는 지금 부조리한 연애를 떠올린 것이다. 서로에 대한 책임이나 구속 같은 것 없이 같이 밥을 먹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하는 로맨스를 말이다. 삼류소설 같은 사랑이다. 택도 없다. 망상이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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