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Posted 2014.06.05 16:35

 두어 달 만에 글을 쓴다. 다이어리를 구입한 이후로는 사소하고 간단한 것들부터 일기까지 모두 그곳에다 적다 보니 그런 것도 있고,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늘어놓는 친구와 통화하는데 온 시간을 써 그런 것도 있고, 노트북 전원이 나가버려서 그런 것도 있고, 업무 중에 짬이나면 공부하느라 일기를 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또, 그냥. 이 곳에 글을 쓰는 데 대한 애착이 사라져 버린 탓도 있다. 

 그렇게 사람을 모질게 내치고 질려버리게 해놓고 아무렇지 않아하는 그에 대한 수동적 공격성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지 않게 했다, 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가끔이라기에는 자주. '다시 예전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하는 면상에다 대고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다. 애꿎은 친구가 내 푸념을 다 들어주었다. 나는, '개똥같은 소리하고 있네', '지랄 똥을 싼다', '말이야 막걸리야', 찌질하고 좀스러운 새끼, 역겨워, 같은 말들을 수십 번도 더 내 뱉었다. 너는 니가 나한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도무지 모르는 것 같다. 나는 괜찮아서 그 자리에 가는 게 아니야. 우리에게는 무엇도 남지 않았고, 새로 무엇을 만들 수도 없는 관계야. 그라운드제로 같은거야.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야. 니가 만약 내게 그런 말을 다시 한 번 꺼낸다면 나는 그렇게 말할거야. 너랑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똑똑히 들으라고. 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무 쉽게 잊은 것 같다고. 니가 괜찮다고 다른 사람도 괜찮은 건 아니라고.

 몸에 무리가 되는 걸 알면서도 달렸다. 좀체 가라앉지 않는 화를 가라앉히려고 온 힘을 다해 달렸지만 그도 충분치 않았다. 달리면서 나는 칼을 갈고 있었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럴 권한도 없다. 나는 그것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라고.

 봄을 틈타 여기저기서 들썩 거린다. 비록 가까운 이들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씹어대면서 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 많이 단단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쉬이 흔들리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외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

 갑작스럽게 저녁을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

 퇴근 시간보다 훨씬 더 늦은 시간에서야 그 아이가 왔다.

 집에 갔어야 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아이를 기다렸다.

 밥을 먹었고, 이 전에 함께 걸었던 길을 걸었다.

 나를 왜 만나자고 했어?

 나는 그 아이에게 묻지 않았다.

 우리는 걸었다.

 그 아이가 손을 잡았다. 나는 뿌리치지 않았다.

 그러지 말라고,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 아이가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었다.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

 밀어냈다.

 하지마.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나 니가 나한테 이러는 거 이해 안돼. 봄이라서, 외로운가보다 할 뿐이야.

 나한테 이러지 말아.

 너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잘 해야지.

 그 아이가 그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대답했다. 다 지난 이야기야.

 이제와서, 왜 그런 말을 하니.

 후회할 짓 하지마. 정신 차려.

 울듯한 표정을 짓는 그 아이의 마음을, 나는 정말로 모르겠어서

 왜 그래.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볼을 만졌다.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신 나는 

 이제 집에 가. 했다.

 다음에 또 봐요.

 그 아이가 말했고

 나는

 다음 번엔 이러지 마.

 말했다.

 그 아이가 대답을 했던가

 모르겠다

 

 나는 왜

 너에게만은 모질지 못할까.

 너의 약함이 나를 상처 입히는데도 왜 나는

 너를 매몰차게 내치지 않는걸까.

 니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

 내심 만족스러웠던 것도 같다.

 그렇게나마 내가 느낀 아픔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 때-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 그 말,

 내가 생각나곤 했다는 그 말을

 그리웠다고

 이제와 말하는 너의 그 말들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무슨 심보인가 말이다.

 

 모든 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너의 그 유치한 태도들이

 나를 상처입히지는 못했다.

 그건 너를 용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이미 지난 여러 번의 연애에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기 때문일 뿐이다.

 나는 속으로 너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비웃었다.

 차라리 나와 자고 싶다고 말을 하지 그랬니. 

 같이 있어요

 나랑 바다 보러 갈래요

 그런 말들을 내뱉은 니가 원망스러웠다.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고,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었다. 

 차라리 우리 사귈까요 하면서 크고 대가 싱싱한 꽃 한 송이를 건냈더라면 

 그래, 좋아

 속아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나의 무덤덤한 태도에 기대어

 멋대로 굴었다.

 그럼 왜 받아주는거냐고, 니가 물었다.

 그것들이 내게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야.

 내가 말했다면 너는 울었을까.

 아마도.

 까맣게 타들어간 내 속도 모르고 너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겠지.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를 끌어안고 우는 대신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를 밀었다.

 잘 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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