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2일

Posted 2014.06.04 16:35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 업무에 익숙해지자마자 권태가 몰려온다. 아침 일곱시 즈음 일어나 간단히 준비를 하고 요깃거리를 챙겨 7시 40분에 나온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8시 20분 전까지 출근한다. 매일 아침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넘기고 나면 9시 즈음. 이 때부터 11시 30분 점심시간까지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한다. 대부분이 단순하고 간단하다. 머리를 짜내야 하는 일도, 목표량에 대한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틀림없이, 양식에 맞춰서만 하면 된다. 사실, 일보다도 점심 먹는 일이 더 일이다. 누구와 점심을 먹는 게 여자들로 구성된 집단에서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한동안 잊고 지냈더랬다. 거의 말도 없이 밥을 먹고, 말도 없이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너무 비사회적인 인간인걸까. 말도 안하는 잘 모르는 애가 같이 점심 먹는 그룹 안에 있는 건 그 자체로 민폐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거참 먹는 게 여차하면 도시락 싸다니고 말아야겠다 생각을 한다. 필요없는 말을 하지 않는 내가 나는 편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차라리 혼자 밥 먹고 남는 30분 산책을 다녀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지만, 업무 연계 같은 것들을 고려했을 때 점심시간에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는 편이 낫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한동안은 견뎌야겠지. 그러다가 점심을 챙겨와서 먹고, 산책을 다녀오거나 공부를 하거나. 하다보면 쟤는 원래 저런 애구나 하게 되는 날도 올 것이다. 오후 업무도 오전만큼 한가로울 때가 많다. 아직 내가 맡은 일이 적어서 더 그렇다. 한 달을 주기로 날짜별, 주별로 마감기한이 주어진 일들이 있고 그 외에는 잡무다. 정리와 기록과 분류와 정산. 아는 것이 많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회의감이 밀려온다. 좀 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했어야 한다고. 더 알아보고, 더 생각해보고 결정을 했어야 한다고. 

 그러나 안다. 애초에 돈이 급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일하는 강도와 시간을 꼼꼼히 따져 지금의 일을 구했다. 주 5일, 오전-오후까지의 근무, 야근이나 연장근로가 없는 일. 지금 내 한 달 생활을 건사할 수 있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일이다. 뭐랄까,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근로의 내용은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 매일 아침 눈을 떠 가야'만' 하는 곳이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 나는 그런 것들을 못 견딘다. 이런 걸 두고 반사회적 성향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나는 그냥 혼자인 게 편하고, 제약이나 구속이나 지시에 이유없이 반하고, 의무를 저버리고 싶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 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두 다 내팽겨쳐버리고 싶은 욕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 솟는다. 고정된 수입만 보장된다면 특수한 기술을 지닌 프리랜서로 사는 게 내게는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아직은 여기에 붙어있는 거지만.

 적은 수입이라도 붙어있으면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표를 쓰고 날라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매일을 보내다 보면 경력이 쌓이고, 월급이 오르고, 자기 앞가림 쯤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능동적인 삶의 태도라고는 할 수 없어도 썩 괜찮은 정도의 현상유지는 보장해주니까.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 일 없이 산다.  

 그리고 꼭 노래처럼, 그 말이 기쁘게 들리지 않는다. 별 일 없이 별 다른 걱정 없이 산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럴 이유 없이 마음 졸이고 불안해진다. 나는 범인의 삶에 환멸을 느낀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주어진 하루에 충실한 삶. 생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아도 괜찮은 살아있음은 내게 죽음보다 못하다. 가슴 뛰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내게는 비겁으로 여겨진다. 수치스럽다. 부끄럽다.

 나는 이상주의자. 그것은 관념론자와는 다른 말이다. 아이처럼 꿈을 꾼다. 한 사람 분의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어른'들의 세계에 나는 아직도 속하지 않았다. 속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아이로 남을 것이다. 무책임하고 철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몽상가라 부른다. 

 몽상가는 고독과 가깝다. 누군가와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티가 나는 모양이다. 나는 좀체 심심한 일이 없다. 한량으로 타고나 말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어도 따분하지는 않다. 생각만 하고 있어도 시간은 잘 간다. 많은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회사에 있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나는 나를 치장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옷을 사거나 메니큐어를 칠하거나 머리를 하거나 여하튼지 그런 것들이 쓰잘데기 없어보인다. 이럴 때보면 수도원 생활도 썩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근래의 상담과 치료는 정체기다. 약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고, 상담도 2-3주에 한 번 꼴로 줄였다. 확연히, 상태가 나빠졌다. 자주 울고, 절망에 휩싸이고, 하루 중 대부분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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