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4일

Posted 2014.05.30 16:33

 치료에서 어떤 기점을 넘어서면서 생활에도 활력이 불었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짐작했던 것보다는 이른 변화였다. 전에 비해서는 비할 데 없이 좋아졌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마침 맞게 환경에도 변화가 있었다. 나는 더이상 피할 수 없이 모든 것에 자립해야할 시기를 맞이했다. 모아준 돈으로 신대원을 진학할 것인가, 아니면 이걸 묶어놓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정도를 모은 후에 다시 공부할 것인가를 놓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예전에는 재정적인 문제를 앞에 놓고 학업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너무 쉽게, 빚을 내서라도 공부를 먼저 하는 게 맞는 거라고 단호하고도 가벼운 조언을 내놓았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내 일이 되고 보니, 참 무거운 문제다. 

 그리고 나는 지난 해 말부터 시작해 조금씩 마음 먹은 일들을 실행해가고 있다. 먼저는 사역을 정리했고, 병원을 다니고 있으며, 피부과를 다녔고,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하기로 결정을 내려 말단 사무직에 입사했다. 첫 번째로는 내가 앓는 병 때문에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고, 회복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단순히 어떤 질병의 차원을 너머 내 자신이 성장한다는 의미에서도 지금은 그 자리에 설 수 없겠다 생각했다. 그 자리는 금속처럼 무겁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신대원 진학을 보류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공부를 계속할 마음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목회자후보생으로서의 동기부여가 과연 내게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이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냥 진학할 수도 있는 일이고, 사실 지원서 낼 때도 내 개인적인 병력을 기입하지 않았다면 무탈히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공부를 마치고, 유학을 다녀오고, 그런 것들이 어쩌면 좋은 기회를 제공할 지도 모른다. 사역을 한다면 학비나 생활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번째로 사역을 내려놓고, 신대원을 회의하면서, 생활고를 맞이하고 보니 무작정 진학한다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로는 치료에 전념하고자 함이다. 치료에 전념함, 이라는 대주제 아래에는 여러가지 소주제가 분류되어 있다. 재정적 독립,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을 해내는 것.

 

 점심식사 1시간을 포함하여 하루 9시간, 주 5회 일을 하면서 매일 토익 공부를 한다. 간단하게나마 끼니를 챙기고, 돌아오자마자 저녁을 해 먹는다. 1, 2, 3월까지는 내내 어학관련 시험들을 준비하면서 최대한 돈을 쓰지 않는 게 목표다. 일에 익숙해지면 도시락도 싸 다니려고 한다. 그리고 3-4월부터는 새로 이력서를 넣어 지금보다 월 50-100 정도 더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볼 생각이다. 가능할지 아닐지는 가늠도 되지 않지만 내게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마음먹고 해야겠다 한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이다.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내 속에 있던 자만심이 진짜 자신인지 아니면 그저 허영인지를 분명히 깨닫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고, 나 자신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오버페이스 할까봐 걱정스럽고 무서울 때가 종종 있다. 이전에는 모든 것에,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어 무반응했던 것들에 이제는 관심을 갖고 반응을 한다. 그말인즉슨, 부정적인 반응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감추어두었던 것들이 표현된다. 나는 짜증, 분노, 신경질이 많은 사람인데 우울증을 앓으면서는 사실 그런 기질들이 드러나지 않았었다. 주치의는 좋은 징후라고 말하지만 나는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 

 다른 한 가지는 자살충동이다. 자신이 없어질 때, 혹은 내가 무가치하게 여겨질 때, 혹은 불안이 도사리거나 극도로 스트레스가 폭발하려고 할 때. 이전에 비해서 끈덕지지는 않지만 매우 강하게 후려친다. 일을 하게 되면서 술을 마시지 않게 된 일이 다행스럽게 여겨질 만큼 그렇다. 그리고 이제는 실행능력이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스로도 든다. 그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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