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1일

Posted 2014.05.28 16:32

 

슬픔이여, 이제 안녕. 다신 나를 찾지 말아줘

어떤 추운 밤에도 어떤 궂은 날에도

저녁 어스름이 진 내 작은 창가에 어느새 별들이 내린다

너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나의 가장 오랜 벗이여

나는 네가 없이는 내가 아닐 것 같아

차가운 너의 품 안에서 눈 감으면 어느새 꿈 속을 걷는다

저기 먼 숲에서 짙은 어둠이 끝없이 속삭이는 너의 이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아 다시 너에게로 간다면

슬픔이여 이제 안녕. 이젠 나를 그만 놓아줘

어떤 추운 밤에도 어떤 궂은 날에도

너에게 건네려는 마지막 인사에 어느새 눈물이 내린다

 

 

자우림이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을 차근차근 들어보다가 한 곡을 계속 찾게 되었다. 슬픔이여, 이제 안녕.

치료를 받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우울했었기 때문에, 우울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우울함이 없어진다면 그간의 내가 없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불행은 나를 고향으로 삼았고, 슬픔은 나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절망은 내 걸음 밑에 놓인 길이었다. 너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나의 가장 오랜 벗이여. 나는 네가 없이는 내가 아닐 것 같아. 차가운 너의 품 안에서 눈 감으면 어느새 꿈 속을 걷는다. 고통, 네 덕에 살았다 하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슬픔이라는 품 안에서 쉬곤 했던 것이다.

 

 울타리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갈수록 상담이 추상화 되어가는 것 같은 인상이 들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집짓기'.

 나는 울타리만 있고 집은 없는 아이같았다. 그런데 이 울타리는 망가져 있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무서워서 울타리 안에 있지만, 집이 없어서 춥고 배고프고 아팠다. 울타리 바깥이나 울타리 안이나 별 다를 것 없다는 사실. 집이 필요하면 집을 지으면 된다는 사실.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라는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래의 생활을 두고, 난초를 가꾸는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자끄 상페의 '각별한 마음'이라는 책의 일러스트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이다. 기실 내게 필요한 것은 가족=집 이라고 대치되어 있는 상징이었고, 이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있어도 되는 곳, 또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꼭 타인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집은 내가 만들면 된다. 나는 거기에서 있을 수 있고, 쉴 수도 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존재유무에 따라 나의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 

 어제도 상담가는 '나'라고 지정한 인형을 꺼내들었다. 나는 아직 말을 할 수 없다고 했고, 그런데 신경이 쓰여 불편하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나를 보고 앉은 인형을 돌아세웠다. 

 조금은 이 공간이 편해진 모양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이더라도 내키면 하고, 떠오르는 것을 말할 수 있고, 물어보고, 표현하는 일이 자유롭게 느껴진다. 

 

 슬픔과 이별하기로 결정하고나서도 사실은 그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탓에 나는 슬픔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늘어졌었다. 아마 내가 인형과 화해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 마음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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