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4일

Posted 2014.05.23 16:30

 고전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사회 현상 이면의 병든 진실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일 종교계의 시국선언으로 주변이 시끄럽고, 지상파는 왠일인지 그간 기독교 외에는 잠잠했던 각 종교계 비리들을 기다렸다는 듯 펑펑 터뜨린다. 나라 안 정치권력 잡은 자들은 세력다툼 권력다툼으로 당장 시급한 민생 법안과 예산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대국회질문은 개그판인데 이 와중에 국제 정세는 우리 나라가 외교적으로 얼마나 무력한 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랑 손잡고 히히덕 거리고, 우리 나라는 대놓고 큰소리는 못 치고 중국이 손 건네니 아이고 감사합니다 굽실거리는 격. 

 사실, 몇몇 지인들이 시국선언이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신학이 어떻고 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 동참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지켜야할 조국이 없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사상에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민주주의의 본질이 더럽혀진 지금의 시대상을 그냥 보고 넘겨서는 안된다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입장을 견지해야하고 그에 준하는 활동을 보여야 한다고, 들 말한다. 그러나 - 내게는 그런 말들이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 민주주의여 만세. 피로 시를 쓴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간절한 열망들을 전하지만, 그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기에는 당장 지켜야할 것들이 더 크다. 잃을 것이 더 이상 없는 사람들에게 사상은 유일한 재산이지만,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보다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온 세상 만물 곳곳에 스며들어 사람들을 쥐락펴락한다. 마이클 샌더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그래도 읽혀질만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켜야할 조국이 없는 내게 사람들이 그렇게 핏대 세우고 있는 시국선언은 그저 쓰잘데기 없어 보이기만 할 뿐이다.

 어제. '사이비'라는 영화는 그 보다는 조금 나았다.

 '무엇이 진정한 구원인가?'. 혹은, '믿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인간군상의 나열은 사실주의의 심화라고 넘겨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영화가 핵심적으로 쏘아대는 질문은, 선과 악의 극단적 전환이나 종교 상황의 모순을 지적하는 차원보다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가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지적대로 종교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행여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는 이 질문을 마주해야만 한다.

 우리의 믿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무엇이 우리를 참 구원으로 이끄는가. 영화에서 '신'이라는 존재의 유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짚어두어야 겠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신'이라는 존재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종교 교리의 정확성이나 명료함 같은 것들도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희망'이 신의 자리, 교리의 자리를, 종교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죄책감이나 마음의 평안, 의지처를 이유로 종교를 찾는다. 종교 행위가 우리 생의 짐을 덜어주는 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 종교에 관해 말하자면 여기까지만 말해도 된다. 하지만 '기독교'라는 필드 위에서  이 주제를 다루려고 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더 무겁고 깊고, 농도가 짙어진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진정으로 신자인가. 질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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