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일

Posted 2014.05.22 16:29

 

 끊임없는 움직임. 무언가 유의미한 것을 하고 있지 않은데도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멈춰있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머리가 아득해져오고, 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불안과 초조가 엄습해온다. 분주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 나만이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은 심정 그런 것들과 함께 모든 것들이 짜증스럽게 여겨진다. 모든 것이 무료하고 권태로운데, 동시에 기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 채 모든 것에 짜증을 내고 성가셔 한다는 것이 어딘가 모순 같다. 

 주로 내가 못 견뎌 하는 것들은 '소리'이지만, 요즈음은 '움직임'들에 예민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를테면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세탁기 안의 통이 소용돌이치는 움직임이라던가, 물살에 옷이 꼬이는 것이나, 혹은 창 밖으로 들리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를 듣고 시속 90 km의 속력으로 질주하는 움직임이라든가, 심야의 도로 위에서 자동차 뒤에 달린 빨간 정지등이 어지러지는 모습이라든가, 도무지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이 자기멋대로 움직이는 어린아이들의 뜀박질, 지하철이 들어오거나, 사람들이 빽빽한 곳에서 움직이는 것이나, 티비 속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양새도. 어딘가 급박하고, 분주하며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 그런 것들에 나는 압박을 느낀다.

 일시정지.를 누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의 어느 지점에 못박힌 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걸음을 걸었고 그 걸음은 나를 어디에도 데려다놓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하려고 했던 것들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로 12월이 되었고, 조기졸업으로 벌었다고 생각한 한 학기의 시간이 낭비되었다. 

 무가치감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상담은 좀처럼 진전이 없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실패자로, 쓰레기로, 재활용도 불가능한 폐기물로 낙인 찍는다. 상담사는 내가 근거를 대지 못한다며 나를 짓누르는 무가치감이 부당하다 피력하지만, 입밖으로 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변론을 늘어놓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단 한마디도 빈말로 '그건 잘못된 말이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건낼 수 없었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솔직하게 하고 있는 거라는 상담사의 말은 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한 마디가 내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환멸, 증오, 미움, 분노, 측은함을 포함한 모든 부정들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는 것,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은 떠올리지도 못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 아닌 다른 것들을 스스로에게 줄 수도 없고 줄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도 없고 변한 자신을 생각하지도 못한다는 것. 되지 않는 것들을 머리로 이해했다고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상담사가 사용한 '진실'이나 '솔직'이라는 어휘들이 내게 위안을 준 것은 억지 긍정과 낙관만이 나아질 길인 것처럼 여기는, 그래서 직간접적으로 내게 심리적 부담감을 안겨왔던 '애씀'들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선물처럼 지난 주말을 보냈다. 오빠와 스노우보드를 타러 갔다. 착해빠진 우리오빠는 난생 처음 보드 타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주었다. 장갑에 넣어둔 리프트권을 잃어버렸는데 다시 찾아 오는(!) 신기한 일도 겪고, 나는 멀리서도 오빠를 한 번에 찾아내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3시간을 꼬박 눈밭에서 뒹굴고, 새벽 1시가 넘어 서울로 돌아왔다. 뜨끈한 감자탕 한 그릇 해치우고 집에 돌아와 노곤한 몸을 녹이며 드라마 시청. 그 다음 날은 느즈막히 일어나 빈둥거리다가 대청소. 그리고 근교로 나가 외식, 장보기까지. 군소리 없이, 그러나 여전히 서툰 대화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외롭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어 부러 꾸미지 않았지만 즐거웠고,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내게는 필요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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