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5일

Posted 2014.05.20 16:28

 매 주 한 차례,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몹시 침울해진다. 다 털어내지 못한 감정의 찌끄러기들, 소용돌이들 때문에 속이 시끄럽다. 혼자서는 마음을 갈무리하지 못해서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자마자 후회했다. 기꺼이 나와 함께 있어러 온 이의 끝없는 수다가 귀찮고 짜증스럽다. 이렇게 되먹지 못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도 나는 미안한 줄을 모른다.

 오늘 상담사는 내게 상황카드들을 보여주며 이 중에 무언가 내 정서를 자극하게 하는 것을 택하도록 했다. 첫 번째 묶음의 그림들에서 하나를 골랐다가, 다른 카드를 보고 싶다고 했다. 두 번째 묶음도 그냥 넘어가려다 문득 마음이 쓰이는 그림이 있었다.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 일어나는 그림, 속에서 기억 하나가 솟아났다. 그림 하나를 앞에 놓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상담사가 묻는다. 이 그림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들어요? 서운해요. 무엇이? 엄마가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요. 엄마는 지금 어떤 것 같나요? 잔뜩 화가나 있어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요. .. .. 상담사가 다른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그림 한 귀퉁이에 있는 화병을 짚으며, 망설이던 말을 꺼냈다. 카네이션 같은데, .. 나는 문장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내어 마침표를 찍었다. 엄마 생각해서 준비한 건데, 조금도 기뻐해주지 않아요.

 두서없이 떠오르는 기억들을 꺼낸다. 눈은 그림에 고정시킨 채, 귀로는 상담사의 질문을 의지해 떠오르는 대로 말한다. 다 알아 듣지 못했을텐데도 선생님은 묵묵히 들어주고 또 필요할 때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것을 요구한다.

 상담사는 내게 사이코드라마를 요구했다. 인형이 아니라 빈의자를 마주하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나는 엄마, 하고 부르지도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든 것 같아요? 라고 상담선생님은 참을성있게 묻고, 무엇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하고 또 한참을 기다려주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가슴에 꾹꾹 눌러담기만 했다. 내게는 늘,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을 가슴 한 켠에 담아 둔 채 살아서, 이제와 그 말을 하려니 엄마가 없는 자리인데도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미 이 곳에 오기 전부터, 한 주 내내 이 이야기를 꺼내려고 나는 작정한 참이었는데도 말이다. 상담사는 내게 기분이 어떠냐고 다시 물었고, 그럼 자기가 하는 말을 같이 해보자고 한다. 지시에 따라, 엄마 나 너무 서운해요. 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는 그대로 목놓아 울었다.

 상처주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여전히 엄마가 저를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어요. ..

 

 아직은, 마음을 갈무리할 힘이 없다.

 기대치 않았던 상담이었지만 매번 생각지도 못한 데서 인식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 번에 그것이, 내가 나 자신을 충분히 미워하지 못해서 였다면 이번에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나를 발견한다.

 어제 만난 원미는 내가 풀어낸 이 이야기들을 듣고, 자신을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과 충분히 친해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말이 꼭 맞다고 이렇게 이렇게 글을 써야만 나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조차 한번 걸러서 나오는 것이더라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뿜어내고 보니 내가 나를 참 모르고 있었더라고 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거절당했고, 거절당했지만 사랑했다. 그래서 상처를 주는대신 상처 입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에 내게는 미움과 원망과 섭섭함이 가득했다. 머리로 아무리 이해해도, 마음에 닿지 않아서.

 상담선생님은 내게, 지난 회차 때의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진아씨가 왜 그렇게, 누군가가 있음으로 인해서 살 수 있었는지, 왜 그렇게 상대방의 진심에 대한 확신을 필요로 했는지, 오늘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조차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향. 나는 늘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엄마에 대해서는 늘 측은함과 안타까움만을 정당하게 여겼다. 나의 애정결핍, 의심, 확신에 대한 목마름, 그런 모든 것들.

 

 언제쯤 울지 않고 상담을 끝마칠 수 있을까. 눈이며 코가 빨갛게 부은 채 진료실로 들어선 나를 향해 주치의 선생님이 다정하게 건넨 말이다. 그러게요, 하고 나는 빙긋 웃어보였다. 방향지우기. 정체를 드러내기. 주치의 선생님이 사용하는 어휘를 빌어 말하자면 내가 지금 받는 상담치료나, 약물치료의 역할은 그런 것이라고 한다. 언제쯤 울지 않고 상담을 끝마칠 수 있을까, 라는 말에 나는 약간의 안도감과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울고 괴로워하고 차라리 죽기를 바랬던 날들을 떠올렸고, 거기에 덮어두었던 마음들을 끄집어내어 밝히 드러내고, 먼지를 털어내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꼬박 3달 째를 접어들었다. 처음으로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여전히 드문드문 삶에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한켠 견딜 힘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도 벅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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