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1일

Posted 2014.05.16 16:25

 블로그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2008년-2009년 초반까지의 일기는 이미 옮겨둔 적이 있지만 그것도 벌써 2년 전 이야기. 막상 옮기려고 보니, 2009, 2010년이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4년이나 되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걸 자꾸 잊어버린다. 어쩌면 -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달라지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대충, 2008년부터 현재까지의 일기는 500여 편 정도. 어제는 2009년부터 2010년 중반까지의 글을 옮겼다. 그러고도 2011, 2012, 2013 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내가 왜 이짓거리를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글은 쓸데 없이 길고, 많았고, 그리고 내가 썼다는 것이 남사스러워 당장 삭제!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했다. 중2병 보다 더 심각한 '청춘병'을 나는 대학시절 내내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다. 여전히 서툴고 촌스러운 모양새로 말이다.

 나는 늘 괴로워했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아파했다. 그것은 여전히 마찬가지라 - 어떻게 손 써야할 지 난감하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고, 검사를 받고, 진단이 내려지고, 이제 막 치료의 첫 걸음을 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글을 옮기기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2008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나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다는 점을 자각할 때마다 암담하다. 이 곳에 그 날 있었던 일보다는 내게 떠오른 감정이나 생각들 위주로 써 내려갔기 때문도 있지만, 2008년과 2013년의 나는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어떤 진전은 분명히 있었지만, 내게는 분명히 '패턴화'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들이 있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 이라고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이 '병리적 증상'들로 재평가 된다는 것. 이것은 명백한 변화의 가능성이고, 희망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슬픔과 혼란, 후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마저도 깨뜨려야 할지도 모르는 부정어법일까. 진작에 치료를 받았더라면 나의 지난 5년이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때나, 여전히 팔팔한 20대 청춘을 지내고 있으면서도 삶에 대한 호기심이나 열정이나 에너지가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인식도 나를 괴롭게 한다.

 나보다도 더 내 문장을 아껴준 그 사람이 자꾸 그립다. 그러나 나는 내 글의 독자를 자처한 그에게 몹시 잔인한 방법으로 상처를 줬다. 독자이자, 또한 글의 인물이 되는 사람의 심정을 나는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내 괴로움과 아픔을 이해받고 싶다는 욕심만 있었다. 그러니 그의 비난은 모두- 정당했다. 하루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싸이월드에는 작년, 제작년 같은 날 기록이 있으면 뜨더라. 알아? 너는, 그 때도 지금이랑 똑같았어. 그는 항상 이렇게나 영리하고 잔인하게 그리고 정당한 한 마디 말로 나를 무너뜨린다. 그의 다정함은 때때로 무섭도록 차갑다. 나도 알고 있듯이, 나는 늘 우울한 사람이었다. 사랑에 약했고 이별이 닥치면 존재가치를 상실한 듯이 굴었다. 내게 존재하는 세상은 '너' 뿐이라는 듯이. 그는 내 우울적 사고나 성향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그 앞에서 노래하는 '사랑'을 비판한 것이다. 

 처음으로 그를 남겨두고 돌아섰을 때, 나는 아무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뒤에서 뭐라뭐라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도, 의미도 내게는 닿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바랬던가?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무엇을 바랬던가. 일주일 하고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그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가 내 가족이길 바랬다. 어떤 말을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이어도, 내가 논리도 없이 무작정 감정을 표출할 때도,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 그에게서 돌아선 날로부터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가 표현했던 것처럼 내가 여전히 지독한 이별을 겪고 있어서, 네가 없는 세상이 지옥같아서가 아니었다. 구실이 필요한 것 뿐이지 않느냐고 나는 스스로를 힐난해보았지만 막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를 잃은 것이 내가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큰 타격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다. 그는 어느새 내게- 가족보다도 더 가족같은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사랑의 상실이나 부채감 같은 것들은 사실상 자살의 명확한 동기는 아니다. 지난 주에는 죽고 싶었다, 는 나의 말에 의사는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을 생각했었냐는 질문으로 답했다. 다 꺼내지 못한 말들이 남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다. 그런 내게 주치의는 담담한 어조로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감정들이 있을텐데, 예를들면 외로움 고독 슬픔 같은 것들, 어떤건지 얘기할 수 있을까?' 물었다. -무가치감. 나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고 선생님도 그 이상 무엇을 묻지는 않았다. 상담을 받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 다시 그가 떠올라 한 차례 울면서 그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고 최소한 몇 달 이상은 살아 있을 예정이다. 만약 내가 다시 죽기로 결심한다면, 그것은 틀림이 없이 실행될 것이고 결단코 실패하지 않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당장에 죽지 않았던 것은, 의사에게 답한 대로 충동적으로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솔직히는 죽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주 내내 죽음을 놓고 사유했다. 죽고 싶은 마음에 대해, 죽음의 방식에 대해, 이와 관련한 주제들에 관해서. 그러다 아주 단순한 사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다. 방법은 경우에 따라 문제가 되겠지만 죽으려면 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 시기도 결정할 수 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죽지 않아도 된다. 비논리적일지도 모르는 이 생각이 내게는 생각보다 명료하게 다가왔다. 죽음을 선택하고 말고의 갈림길에 있는 것도, 내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 그러고 나니 절망적인 심정이나 극심한 우울감에도 불구하고 죽으려고 작정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살아야만 하나, 절망을 담은 질문에도 담담히 답할 수 있었다.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내게 삶을 강요하지 않았다. 삶에 무슨 의무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게 달려있는 문제다. 도덕도, 법도, 신앙도, 그 어떤 사회적 관습도 배제하고 내린 결론이다. 내가 알기로 사람은, '그 어떤 것 때문에'라는 당위로 살아가기에는 무너지기 쉬운 존재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런 것들로 설득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안에서부터 동기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아직 내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확신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죽음을 '준비'하려고 하면서 오히려 살아야할 이유를 발견한 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행이라든가, 금전적 문제라든가, 일이나 학교의 문제, 그리고 정말 죽기로 결심했다면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할 것들의 목록을 머릿속으로 작성하고 순서를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그러면서 아 죽는 것도 일이네 하다가는 이것들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들이며, 그에 걸려있는 여러 관계들이며를 염려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니, 당장은 죽을 수 없게 되었다가, 일단은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다. 

 계속 치료를 받을 것이고, 운동하는 습관도 유지할 것이며, 식사도 잘 챙길 것이다. 여전히 내게 주어진 책무를 쉽게 내버림으로써 타인의 기대를 깎으려고 기를 쓰겠지만-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떨어뜨려왔다- 그래도 어떻게든 삶을 꾸려갈 것이다. 5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거의 같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작은 진전, 일각의 변화에 주의하기로 했다. 미세하지만 뚜렷하게 나는 달라지고 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찾아오는 자살충동과 종일 시달리는 무력감과 우울에도 살아갈 수 있다.

 아니, 살아가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시간은 덧없이 흘려보내도 어떻게든 간다. 매일 늦은 밤 5.5 km를 뛴 지 한 달이 넘었다.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종료지점이 한 없이 멀다. 삶이란 이렇게 지루한 달리기 같다,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무가치감에 시달리며, 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심각한 정도로 좋지 않은 현재의 상태를 자각한다. 

 억지 희망을 노래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고 말이다. 비참할정도로 나는 나 자신을 학대한다. 떨쳐내보려 애쓰지만 잘 안 된다. 이를테면, 나는 소설을 쓰고 싶지만 언젠가 그가 내 글을 '별로'라고 한 이후부터는 단 한줄도 소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누군가 SNS 에 반 픽션의 에세이글을 올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작가'라고 칭찬을 한다.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사람, 언젠가 '매력'에 대해 놓고 언급한 일이 있는 사람. 그 하나로 나는 그사람을 미친듯이 투기하고, 나 자신의 무가치감과 무능력을 비난하고, 괴로워한다. 무엇이든 이런 식이다. 그가 관계되어 있으면 그것이 더해져서 괴롭고 그가 관계되어 있지 않으면 그 관계되지 않음이 괴롭고. 또, 그를 이유로 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 자신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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