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4일

Posted 2014.05.15 16:25

2013.10.24. 오전 12.24.

노회고시를 마치고 돌아와, 잡힌 약속을 무시한 채 술을 마셨다. 그래봤자 버니니 3병. 취하지도 않는다. 가슴 속이 답답해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결국 울음이 터졌다. 한참을 통곡했다. 종일, 죽을 생각만 했다. 어떻게 주변을 정리할 것인지 그리고 또 어떻게 죽을 것인지. 한 사람의 생이 뜨개질 코처럼 엉키어 있다. 쉽사리- 맡은 바를 내팽겨치지 못하게 된 것을 보면 나도 조금은 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보채 노회고시에 참석했다. 여기서 다 낸다, 하고 문제를 줬는데도 나는 전날 밤 11시가 넘어서 대충 훑어본 게 전부였다. 차라리- 떨어져버려라 하는 마음도 컸다. 신대원 원서를 접수하는 23, 24. 하필이면 이 때에 나는 생을 놓아버리고만 싶다. 가야할까, 갈 수 있을까, 가도 될까, 간 들 뭐가 달라지나.

면접관의 질문에 막힘 없이 술술, 잘도 늘어놓는다. 내가 믿어왔고, 진실이라고 확신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가공의 것처럼 느껴져서 현실감이 없는 진술들.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노려보는 시선을 받고도 무덤덤한 것은, 그들이 결코 내 속내를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다. 어찌되든 상관없다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왜, 실수인척 그렇게 메세지를 보냈을까. ‘형님, 얘 진짜 어떻게 되는 거 아니겠지’ 확인도 안하고 지워버렸지만 찰나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다. 그 말을 읽고 보니- 진짜, 어떻게 되야하나보다 싶었다. 빼도박도 못하고 죽어야겠다, 고.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참 우습게도, 머릿 속에는 죽을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몸은 살겠다고 움직인다. 5km를 뛰고, 다음 날 먹을 씨리얼과 우유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엉엉 울었다. 치료가 다 무슨 소용인가. 어제는 종일 잠을 잤다. 오후 3시가 넘도록 이불 밑에 숨어 울다가 자다가 햇다. 그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 몇시였는 지도 생각나질 않는다. 그저, 영화보자는 말에 대충 약속 아닌 약속을 잡고 일어나, 대충 예의차릴 정도로만 준비를 하고 나섰다.

보자던 영화는 보지도 않고, 하릴없이 강남역 근처를 배회했다. 왜 보자고 한 건지, 보자던 영화는 왜 안 보는 건지, 아무것도 안할 거면 집에 가겠다는 나를 이유도 말하지 않고 붙잡아두는 건 무슨 심보인지. 캐물으려다 그냥 내버려뒀다. 자꾸 내게 손을 대는 그 아이를 단호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뿌리쳐냈다. 늘 그랬듯이 거침없이 말한다. 하지마, 짜증나 왜이래. 넌 항상 너무 쉽게 손을 대. 변명하듯 그아이가 말했다. 누나가 만만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나도 모르게 손이 가요. 내가 새우깡도 아닌데 왜 자꾸 손이 간다는 건지. 내가 그냥- 내버려두니까 쉬운 거 아니겠냐고, 내 책임도 있으니 별로 탓할 생각은 없다 했다. 자꾸 손을 잡고 허리를 끌어안으려 드는 그 애를 분명하게 밀쳐냈다. 하지마. 손대지 마. 놔. 할 일도 없고 할 말도 없고 그러면- 이제 집에 가자. 힘들다. 했더니 그애가 말한다. 나랑 같이 있어요. 내 옆에 있어줘요. 나는, 그래- 차라리 그렇게 말하는 게 낫네. 걷자. 했다. 그 애는 누나랑 둘이 있고 싶은데. 했지만 나는, 뭐하러. 라고 했다. 사람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니, 대화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잖어. 단 둘이 있어야할 이유는 없어. 누나, 독심술 있는 거 아니었어요? 뭐라는거야.. 하릴 없이 걷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의미 없는 장난을 걸고, 마침내- 교대역. 돌아가겠다고 선포한다. 누나, 갈거예요? 어. 그래요, . . 그래. 잠시 침묵.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작게 한숨짓고, 다시 말했다. 정신차리고 살아.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나는 자리를 떴다. 뒤에서 어렴풋이 따라오려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거기까지였다.

단 한번도 그 아이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나를 내팽개치기 위해 그 아이를 이용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아이가 착각하도록 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나 행동, 말에 화를 냈고 언짢아했고 그것을 타인에게 떠벌리며 나를 옹호했었다. 그 아이를 나쁜 새끼로 만들고, 나는 피해자인 척 굴었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슴 아팠던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그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었다. 하지마, 싫어. 너 짜증나.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 꺼져. 후회할 짓 하지마. 다시 생각해. 그 아이가 나를 함부로 대했음에도 나는 그걸 다 받아줬으므로 아마 타인에게 이해받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나를 어떤 식으로 학대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내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지 그렇기에 타인이 나를 다루는 방식과 그것이 어떻게 무관할 수 있는지.

이 아이가 내게 느끼는 연민이나 후회나 마음쓰임이 귀찮게 여겨지는 나는, 나와 같은 마음일 그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 그 날, 나는 그의 진심을 듣고 그의 눈빛에서 그것이 진실임을 확인한 나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소리지르듯 말을 쏟아내는 그에게서 돌아섰다. 그가 뭐라고 뭐라고 내게 소리쳤지만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마음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울지도 못한 채 걸어서 집으로 들어와 얕은 도수의 와인 한 병을 마시고, 약을 삼키고,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싶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몇 번이나 나는 숨을 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마음이 죽어버렸는데도 몸은 살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성가셨다.

그는 왜 그런 메세지를 실수인 척 보냈을까. 면죄부를 얻고 싶었던 거라고 짐작해본다. 내가 스스로 택한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미안하지만, 그가 내게 촉발점이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굳이 그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은 위로가 될까. 그는 마치 빌라도가 유대인들 앞에서 손을 씻기고 자신의 결백을 명백히 한 것처럼 그의 삶에서 나를 털어내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리고 내가 그에게 확인 시켜준대로 우리는 완전히 끝난 관계고, 아무 상관없는 사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죽고 싶다.

계단을 오르면서 2011년을 떠올린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더라면, 그 날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 날, 아니면 그보다 더 이른 어느 때에 나의 삶이 끝났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속을 게워내고, 의식이 돌아왔는지를 확인하던 여의사가 내게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죽으려고 했어요? 죽고 싶었어요? 내가 무어라 대답했던가. 노려봤던 기억은 난다. 네, 저 죽고 싶어요. 죽게 내버려두세요. 억지로 살리실 필요 없어요.

죽게 해달라고 비는 환자와 어떻게든 살리려는 의사, 구조대원들. 우리가 싸웠던 것은 단순히 물리적 생명을 연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물었고, 그들은 그들이 존재를 던져 구하려고 하는 삶의 가치를 그토록 하찮게 여기는 나를 경멸했다.

살아야만 하나. 결국 나는 그 때든 지금이든 이렇게 죽으려고 작정한 바가 아닌지.

병원에 전화를 할까, 선생님, 저 죽고 싶은데 어쩌죠. 살아야 하나요? 왜요? 선생님, 저 실은, 죽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근데 아무리 따져 봐도 죽는 게 이렇게 사느니보단 더 나은 것 같아요. 살아갈 자신도,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나는 없어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는 없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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