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8일 일기

Posted 2014.05.12 16:23

 반 년만에 피부과에 갔다. 강동에 살 때 갔던 곳도 그랬고, 천호에 있던 곳도 그랬고 장삿속이라 돈은 돈대로 쓰고 얼굴은 얼굴대로 망치고 해서 한동안은 그냥 이렇게 살자, 하고 거의 포기하는 심정이었다. 솔직히는 - 지금 이런 데 돈 쓸 여유 같은 건 조금도 없지만, 거울보며 하루 종일 얼굴을 쥐어뜯다시피하고 있느니보다는 낫겠다 싶어 마음 굳게 먹고 갔다. 스케일링이라도 받아야 될 것 같아서. 피부과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처음으로 원장이 진료를 봐주고, 자세히 설명해준다. 생활습관이며, 먹고 있는 약이며, 지금 얼굴 상태며. 상품 팔아먹기야 어디나 똑같을테지만 청담동에 있는 여느 병원들에 비하면 가격이 택도 없이 비싸지도 않고, 생각했던 것 보다 친절하고, 짐작했던 것 보다는 합리적이고, 그리고 의사가 진료에 치료를 봐주는 곳도 여기가 처음이라서 속는 셈 치고 PDT를 얹어서 받았다. 스케일링에만 1시간은 족히 걸렸다. 얕은 박피제도 의사가 직접 시술하러 오고, 같은 자리에서만 반복해서 올라오는 것들이 대부분인데다 올라온 것들도 손으로 뜯어서 그런 거니 레이저압출을 해달라고 진료 받을 때 요청했는데- 꼼꼼하게 내가 기억하는 거의 대부분을 레이저로 뚫었다. 사람이 탈 때는 오징어 굽는 냄새 같은 게 묵지근한 피비린내와 함께 나는 것 같다, 고 생각하며 뭐라 표현하기 힘들만큼 아픈 얼굴이 벌겋게 얼룩덜룩할 것을 짐작한다. 오히려 관리봐주던 분이 생각보다 너무 잘 참더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그냥, 안쓰러워하는 눈치.  피부과와서 돈 오지게 쓰고도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패키지 팔아먹기식이다 싶으면 삼성역 근처에 봐둔 곳으로 옮길 요량이었는데, 다음주까지 상태를 보고 결정해야겠다. 마침 통장 잔고도 없고. 요즘은 강북이나 강남이나 미용에 드는 가격 수준은 비슷하게 상향조정 된 모양인데, 서비스 수준은 여전히 강남쪽이 낫다는 생각. 다들 비슷하게 말하는 걸 보면 나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 어차피 앞뒤로 쓸데없이 넣어주는 각질관리니 스팀이니 재생관리니 하는 거야 나같이 트러블이 심한 사람한테는 거기서 거기다. 압출 관리를 얼마나 신경써서 해주느냐 주사제나 레이저 압출을 의사가 직접하느냐 안하느냐가 더 결정적인거다. 예전에 다녔던 데는 흉이 지든 말든 무조건 '힘으로' 억지로 압출을 해서 자극 받은 피부 아래 있던 염증이 올라왔는데, 이러면 PDT니 필링이니 이런 건 아무 소용 없게 된다. 시술 받은 효과를 보기도 전에 피부는 일어나고, 압출한 주변 혈관이 다 짓뭉게져서 트러블 주변 피부가 괴사한다. 이런 걸 다 알고 있어도, 쉽게 따지지 못하고 당하는 나같은 소심한 애들은 악순환을 반복하는 거다. 피부과에 돈만 퍼다주는 호갱 같은거랄까. 차라리 나는 그거 효과 못봤소, 안할라오. 내가 원하는 건 이거니 이 돈 받고 그거나 해주시오, 하는 단호함이 뿌리부터 내장되어 있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일상인거다. 그러고보면 똑똑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돈 낸 만큼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건데 무슨 체면을 차리겠다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한 양 행세를 하냐는 말이다. 라고 생각하며 파마를 한 건지 만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일반펌을 해달랬더니 열펌을 해놓고도 컬이 안나와서 열이 뻗친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 컴플레인을 걸고 디자이너한테 이러저러하다 설명을 했다. 퍼머를 한지 몇달 된 것 같아 보인다고. 이건 웨이브가 굵어서 그런게 아니고 그냥 컬이 안나온 거라고. 당장 내일 저녁 샵에 가기로 약속을 잡는다. 얼굴 대하고 내가 얼마나 잘 따질 수 있을 지 잘 모르겠고 뭔지 모르게 쫄리고 겁나고 이건 어쩔 수 없는거라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 미리부터 김빠지다가도 아 뭐 내돈 주고 내가 원하는 게 안나와서 한번 따져나보자는 건데 어떠냐 따져보기라도 해야지 싶은 마음. 

 돈을 쓰는 법도 이런 식으로 배워가는 건가보다. 그러고보면 예전엔 물건이 마음에 안들어도 바꾸거나 환불할 생각은 못하고 구석에 처박아뒀는데 요샌 쉽게 영수증 챙겨 들고 가서 환불을 요청하거나 교환을 요청하고 심지어 다른 걸 입어보기도 한다. 음식점 가서도 음식이 좀 이상하면 곧바로 직원을 부른다. 교환가치를 생각하면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인 거고, 그걸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겠지만 나한테는 이정도의 변화도 큰 진전인거라 정말 작은 것 하나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얘기하는 것, 정당한 대우를 주고 받는 것 따위의 일 말이다.

 내 주변인들도 잘 모르지만, 사실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 무섭다. 눈을 맞추고 얘기하는 법이 거의 없고, 말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것도 실은 무서워서 그런거다. 뭐가 무섭냐하면 그게 또 그렇다. 머리로는 나와 저 사람이 대등하게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도, 실제로는 고양이 앞에 선 쥐마냥 무섭도록 내가 작게 느껴진다. 때로는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내 불안이 상대방에게 미리부터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럼 상대가 나를 쉬운 상대로 여길 거라는 예견에 스스로 사로잡힌다. 그 외에도 그냥, 진짜 이유없이, 무섭다. 나는 이런 내가 낯설어서, 그런 나를 외면한다. 그저 사람과 관계하는 일을 성가셔 하는 것 뿐이라고 혹은 마음이 베베 꼬여 그런거라고.  

 나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아해한다. 꽤 나와 가깝다 여겨지는 사람들 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도를 가볍게 여기거나, 치료예후를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처음보는 사람과도 잘 이야기하는 편이고, 때로 웃고, 이런 저런 주제들에 얕은 정도라도 늘어놓을 말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일단은 이럭저럭 뭔가를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과 이해할 수 없을만큼 부정으로 가득찬 사고와 늘 어딘가 무료한 듯한 시선이나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이나 어떤 일에도 무반응인 내가 드러날 때. 그들은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는 너무 상이하게 달라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지부조화로 낙인찍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건 그들이 잘못하는 게 아니다. 보통은 그런 짐작들이 정당하니까. 그리고 그런 최소한의 선입관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인간에게 있어 불가능한 일이니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위해주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막연한 감정을 느낄 때. 우리 사이에 벽이 놓였거나 혹은 내가 상대방을 정서적으로 밀어내고 있음을 느끼고 마찬가지로 내가 밀어낸 그 힘을 상대방이 인지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때, 그래서 서로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거부감에 휩싸일 때. 당혹스러움, 자책감, 절망, 곤란함,  그런 것들이 표현되지 못하고 뒤섞여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누군가는 나와 대화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거나, 이야기가 안 통하는 사람으로 결정짓거나, 나의 밀어냄을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도움 같은 건 필요없다는 듯이 오만에 차있는 사람이라 나를 판단하거나. 그러나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렇게 문장을 적으며 늘 나는 생각한다. 내가 다른 사람이 쓴 이 문장을 읽을 때 과연 위안을 받을 것인지. 언젠가 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희망한다. 그러다보면, 미리부터 절망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뼛속 깊이 공감할 '고독'이다. 이 고독은 도무지 발 디딜 곳이 없다는 듯이 우리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곤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누구도 없다는 생각을 진실로 믿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우울증에 대한 서술을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우울에 깊이 공감할 수는 있어도 그 우울을 보편으로 치환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우울은 각자에게 절대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정작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낼 재주는 없다. 우울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한다. 우리는 치료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그에 열등감을 느끼거나 혹은, 치료되지 못한 10%미만의 사람들에 자신을 대입하고, 스스로 확정한다. 

 마른 빨래를 걷어 차곡차곡 개어내고, 새로 한 빨랫감을 널어가며 곱씹는다. 종일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문장을 붙들고 있었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한 단편의 제목이고 요즘 자주 듣는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이라는 담론을 끌어들여 대상과 의미와 주체를 그려냈었다.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 그가 쓴 한 문장을 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내가 아파하는 것은 '그 사람'인가 '사랑이 부재'하는 상황 자체인가. 그여야만 하는 수만가지 이유만큼이나, 그가 아니었더라도 같았을 나의 '아픔'을 놓고 크기를 재고 무게를 달아본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고 또 사랑하는 대상이 부재하게 된,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 언제쯤- 사랑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지. 나는 언제쯤, 내가 어떠어떠해야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것인지, 언제쯤- 어떠하지 못해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떠날 수 있을 것인지. 언제쯤, 사랑이라는 것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사랑의 대상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 지나간 사람들을 돌이켜 보면 무엇이 나를, 그리고 그 사람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던가. 사랑받지 못할 이유를 열거하며 그러므로 나는 너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고 상대방을 낙담시키곤 했던 나. 혹은, 이 사랑이 비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들에 골몰하여 정작 서로를 황홀하게 했던- 매력들을 관계를 위협하는 요소로 여겨 서로를 못나게 만들려 기를 썼던. 그 사랑이 무엇이었던가 말이다.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을. 나래의 정당한 말이 나에게 상기된다. 사랑을 주는 것은 용기이고, 사랑을 받는 것은 능력이라고. 그러나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나는 그 말에 이렇게 응수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크기에 맞는 만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영화 월플라워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리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에 대해서 조금은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그런점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을 준다는 것도 사실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의 존재를 걸고 용기를 내었다고 하기에는 스스로의 존재를 너무 작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내던지기란 쉬운 법이다. 우리가 적은 돈을 적선하는 것은 쉬운 이지만, 전 재산을 내 놓는 것은 큰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운동하러 갈 시간을 놓쳐버렸다. 하잘 것 없는 글을 배설하는 것도 이 즈음해서 그만두고 - 이글루스로 터를 옮길까 한다. 거기에는 운동기록과, 치료에 대한 기록과, 그리고 나의 작은 성과들과, 하나의 주제를 가진 하나의 사유들이 정리되어 담기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늘 마음으로 언젠가 해보고 싶다 생각한 것들, 학창시절부터 수첩들마다 빼곡히 적어놓은 list 들에 기록해 놓은 것들을, 하겠다고 결정해놓고 여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적고, 실제로 실현하고, 작든 크든 거둔대로 기록하리라. 이루고 싶은 것들을 했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같은 류의. 그러고도 여전히 염세가로 남는다면 그건 그대로 좋을 것이고, 삶을 조금이라도 희망하게 된다면 그건 그대로 좋을 것이다. 늘 마음에 생각했던 대로, 삶이라는 것은 정해진 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같아야 하는 것도 아니므로, 철모르고 늦되더라도 나는 내 길을 가리라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먹은 마음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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