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5일 일기

Posted 2014.05.11 16:23

 책을 쌓아놓고 읽는다. 하루 종일 읽는다. 조급함과 초조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을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활자가 드러내는 세계에 몰입한다. 그러고나면, 적잖이 마음이 놓인다. 지난 26년을 헛되이 보냈다는,  뒤따라 오는 후회와 자책들을 애써 외면한다.

 인지치료에 관한 책 한 권의 서두를 읽었다. 요는, 우리의 감정이 우리의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판되고 있는 자기개발서나 대중심리학서적의 주요한 관심도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일단의 심리치료기법이 새롭게 등장하고 그 치료가 효과를 입증하고나면 그와 관련한 자기계발서적이나 대중서적이 비슷한 주제를 말장난으로 버무려 무수하게 출판한다. 한동안 유행했던 '긍정의 힘'같은 것들이 그랬고, 요즘의 '감정관리'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게 30년도 더 된 인지치료기법의 확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벌써 출간된지 20년이 더 된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를 최신개정판으로 읽고 있다. 최종개정판을 산지 2년은 된 것 같은데 그 간 책장에 꽂아두고 솔직히는 하찮게만 여겼더랬다. 예전 언론정보학부 신입생 시절에 한 교수님이 이 책을 활용해서 영상예술과 관련한 수업을 하셨다. 직접적으로 이 책을 교재로 언급하지는 않으시고 자신이 편집 저술한 책을 교재로 사용했었는데, 대부분이 미학오딧세이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음을 참고서적을 찾다가 알게 되었다.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해서 그 시험에서 A+ 을 받고 - 학교 수준을 우습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어찌어찌 원서를 낼 수 있는 학교, 그리고 내 수능성적으로는 대충 아무 학과든 넣어도 의학 같은 곳 빼고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학교였다. 그 때도 지금도, 미친짓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선택을 했었다. 주로 나를 학대하는 방식의 선택들.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에 내 존재를 거는 방식의 행동들. 아무튼- 전 3권으로 쓰인 그 책을 나는 한 두권 정도 읽다 말았던 것 같다. 기억을 못하는 걸 보면 다 읽었더래도 소화를 한 것 같지는 않고. 심지어 미학 오딧세이도 '괴델 에셔 바흐'라는 어떤 과학자가 쓴 책의 아류라는 걸 어쩌다 알고는 그 책에도 기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진중권이 이 책을 쓴 게 벌써 20년 전이다. 1990년대, 막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가 최종개정판에서 밝히는 것처럼, 구어체로 다양한 시각적 재료를 사용하여, 어려운 미학을 쉬운 비유와 접근으로 설명했던 것은 그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이었다. 10년이 지나고 나서도 지방대학에서는 그 정도 수준의 책이 '최신의' 것이었고 말이다. 

 미학오디세이의 2권에서는 최근 문연모가 공부하고 있는 '현상학'을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연결지어서 설명한다. 매우 단순화 시킨 터라 오히려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 . 뭐랄까, 그렇다. 오늘 날 인터넷의 보급과 발달이 모든 지식자료에 대한 접근을 매우 용이하게 만들었고, 출판분야도 최근 철학계의 거장들의 저술을 발빠르게 출판한다. 테드나 아트앤스터디 같은 강의들이 오픈되면서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수준도 매우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내가 워낙 무지해서 그런건데, 뭐랄까 -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대사상에 둔감하다는 생각. 혹은, 인식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달까. 대학간판이 소득수준을 결정한다고 목을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서 실용 실무를 다루는 과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이지만 대학의 수준이 판가름 나는 건 결국 인문학의 수준인 것 같다. 

 최소 30년 전에 서울대 학생들이 윤곽을 그려내며 탐구하고 학습하던 내용들을 이제야 따라가는 대중이랄까. 최근 슬라보예지젝이나 알랭바디우 같은 사람들, 정치, 윤리 를 주로 다루는 내용의 책들이 끊임없이 이슈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사실 이런 인식들을 충분히 소화할만한 토대를 갖춘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지치료에 관한 베스트 셀러에 속하는 '필링 굿'도, 이미 소개된지 20-30년은 된 책이더라. 그들이 바탕하고 있는 이론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것이고 말이다.

 늘 시대를 꿰뚫어보는 눈, 혹은 통찰력 같은 것에 대한 이상을 품고 있다. 그래서 유독 역사, 철학, 문학,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만나면 거의 이성을 잃고 매료되곤 한다. 내 안의 어떤 지적 열등감 혹은 갈망 같은 것들이 표출되는 방식일 것이다. 

 

 생각에서 감정이 나온다. 일기를 쓰면서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생각한다'이고, 나 역시 내 생각들에서 감정들이 뒤따라붙는다는 것 즈음은 인식하고 있다.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거부감과 나의 우울을 너무나 '쉽게' 취급하는 것 같아 모멸감을 갖는 나를 발견한다. 그가 표현하는 우울증에 대한 서술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다가, 이 사람이 말하는대로라면 이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우울이 내 삶의 10년을 쥐고 흔드는 것에 어떤 제스쳐도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하고. 그런 것이다. 믿어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찾아드는 강력하고 달콤한 유혹, 절망. 내 안 어딘가에서 치료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도사린다. 이대로 연민에 빠져 있는 것은 얼마나 편안한 일인가, 고통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고통을 서술하고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카타르시스를 내게 제공하는가, 그리고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가장 완벽한 핑계거리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내 앞으로 펼쳐진다고 확신있게 말하는 '희망', '밝은 미래'를 나는 두려워 한다.

 

 우리나라의 마음터치 라는 사이트가 운영되지 않아, 호주의 moodgym 사이트에 들어갔다. 무료로 제공되는 우울증자가치료프로그램인데 이것은 인지행동치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져있다. 나의 생각이 나의 감정을 제어한다는게 요지인데, 하다가 중간에 때려치웠다. 좀 짜증이나서. 이 모든 내용들이 이미 너무 널리 알려진 것들이라, 머리로는 이해된다. 내 몸이, 무의식이 안 따라가주는 거지. 오히려 책이 더 설득력있게 느껴진달까.

 아, 갑자기 전부다 성가시게 느껴진다.

 사이트의 검사 평가도 그렇고, 나는 주로 '사랑받는 것'과 '존재가치'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게 주요 문제다. 내가 늘 괴로워했던 것처럼 - '사랑의 상실' 같은 주제에 나는 취약하다. 사랑중독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행동 유형들, 혹은 나를 학대하는 방식으로 나를 함부로 하는 것들도 이런 데서 파생한다.

 알고는 있는데 말이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 될 때는- 제어 같은 건 되지 않는다. 글이 안써지는 날이다. 몹시 외롭고, 허한 마음 때문에 허기를 느껴 간식을 채워넣고, 옷을 껴 입고 담요를 덮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 몸에서 나는 또 사랑결핍을 괴로워한다. 나는 왜 사랑에 이토록 목말라 하게 되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거부할 때 존재를 부정당한 것으로 느끼는지. 어째서, 사랑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목을 매고 애정을 구걸하는 것인지. 그런 나 자신을 내가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늘, 스스로에 대한 수치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이런 내가 나는 몹시 부끄러운 것이다. 안으로 또 밖으로 나는 순환하는 고리에 잡혀 우울의 늪을 기어다닌다.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이 깊은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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