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3일 일기

Posted 2014.05.10 16:22

 낮달이 눈에 시리다. 코끝이 차가운 공기에 시큰하고, 파아랗고 깨끗한 하늘이 얼음같이 차다. 곧 떠난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설교는 말씀을 파고들게 한다. 깊게, 짙게. 아이들이 6-7세라는 것을 나는 너무 쉽게 잊는다. 어린이들의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고, 어린이들에 맞는 억양을 사용하지도 못한다. PPT 는 매우 인지적이고, 추상화된 도식이다. 이야기하기의 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나의 설교가 지금까지 얼마나 받아들여졌을런지. 떠날 때 떠나더라도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성령의 열매, 라는 주제로 한 달 간의 설교를 준비했다. 첫 주는 '열매로 알아요'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구절 안에서 간단명료하게 메세지를 전했다. 나무의 열매로 나무를 아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우리 삶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는 이런 열매들이 풍성하게 열리게 된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의지를 따라야 한다고. 그리고 이번 주, '정의를 행하며' 라는 제목으로 반석위에 세운 집을 이야기 한다. 열매로 나무를 알고,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 뒤에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자와 같다는 비유가 잇따른다. 사람의 마음 안에 선한 것이 있을 때 선한 것이 나오고, 악한 것이 악한 대로 나오게 된다. 우리의 열매로 우리를 안다고 했을 때,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있어야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선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가르쳐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사랑이 그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유일한 계명이라 할 때,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사랑 혹은 자기희생,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많은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모범을 보이신 사랑. 그것은 미가서의 구절 6장 8절과, 이사야 58장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그리고 그리스도찬가라 일컬어지는 빌립보서의 내용들로 다시 풀이해볼 수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냐.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 정의를 행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그리스도인 됨이 드러나는 삶이라는 것은 이런 삶이라고, 나는 떠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감에 대해 내가 이해한 것을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부족한 지혜가 부끄러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 것뿐이더라도.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기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기를.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부활하심의 능력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오셨다가, 죽으시고, 다시 사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행하라 '가르치셨고' 또 가르치신 것을 몸소 '행하여' 보이셨던 것을 기억하자고. 그의 삶 자체의 깊은 차원을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떠나실 때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은 '가서 모든 민족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였다. 그가 분부한 모든 것.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고, 그의 짐을 지고, 내 안에 그가 그가 내 안에. 아,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품어야 한다. 그의 마음을, 그의 삶을.

 여름 한 철,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복음을 이야기할 때에도 삶에서 드러나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예배를 준비하는 사역자로서의 한계는 언제나 분명하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복음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변주하여 설명하고, 제안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만나주시기를, 부족한 자의 인도로 아이들이 길을 잃지 않기를,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몹시도 예민해지는 저녁. 빛이며, 사람들의 말소리며, 잡다한 소음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선다. 스트레스로 폭발할 지경에 이르지만, 견딘다. 나는 나를 억누르는 데 매우 익숙하다. 화를 못 내는 것은 건강한 일이 아님에도, 나는 늘 분노를 쉽게 억누른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억지로 운동을 하러 나갔다. 적막한 아파트 단지가 지금 내게는 최선의 장소로 느껴진다. 어스름한 불빛과 어둠에 나를 숨길 수 있는 곳. 조용히 풀벌레 소리 어른거리고, 차들이 도로를 질주하는 소리가 멀리 바람소리처럼 들려온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으로 주변 소리를 음소거한다. 달리는 시간에 나는 자유를 느낀다. 모든 소음으로부터, 나의 흩어진 사고의 편린들로부터, 그 모든 것들로부터. 달린다. 가볍게 숨이 차오른다. 몸을 크게 만들어서 숨을 가득 들이 쉬며 몸을 이완한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두번 내쉬고 두번 들이마시고, 절대 속도를 높이지 않고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와 다소 좁은 보폭으로 달린다. 이 편이 오래 달릴 수 있는 방법이다. 무리해서 달리면 1 km 당 5분 20초를 끊어내지만, 그건 내 페이스가 아니다. 7분 에서 7분 20초 사이. 빠른 걸음보다 조금 빠르고, 내가 평속으로 달릴 수 있는 속도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 호흡을 유지하면서, 크게 몸이 무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정도의 강도로, 일정한 속도와 시선을 가지고 뛴다.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하고, 들려오는 음악의 박자와 나의 스텝을 세아리고, 얼마나 달리고 있는지를 피드백으로 받고 하는 동안에는 그래도 조금은 견딜만 하다. 숨을 고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전환하자마자 들이 마신 숨에 울음이 찬다. 눈물이 나지 않아 더 괴로운 울음을 숨으로 뱉고 들이 마신다. 아픔이 날아든다. 달린다. 멈춘다. 들이마신 숨 한 결에서 그의 향기가 묻어온다. 시선을 돌려 그의 흔적을 좇는다. 그는 없을 텐데, 나는 이 공간에서 그의 체취를 감지한다. 나무의 것인지, 풀의 것인지,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인지 모를 것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텅빈 공간에 들어찬 어둠 뿐이건만 눈으로 향을 붙들려는듯 사방에 시선을 던진다. 다시 뛴다. 그를 떠나보내는 일. 그가 내게서 떠날 수 있게 하는 일. 그에게 그의 생활을 온전히 돌려주는 일. 내가- 나의 일을 마주하는 일. 그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 그를 보고 싶은 마음, 그에게 안겨서 안심하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에서 돌아서기로 한다. 그리고 그 만큼, 나는 더 괴로워질 것이다. 한 주간을 겨우 견뎌냈지만 앞으로의 것들은 견뎌내는 것 이상의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여겨본다. 사실,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이 지금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그를 거부하는 것이- 내안에서 발현된 잘못된 반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괴롭다. 그러나 피하지 않을 것이다. 죽을 것 같이 힘들다. 그래도 이겨내고 말 것이다. 흔들린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몸부림치고, 부딪히고, 눈앞이 깜깜해져 오며 아득해져도 나는 마주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달리다보니 달려라 하니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고보면 나의 달리기도 그녀의 달리기와 참 닮았다.

 드디어 - 우울증와 ADHD를 공부하기로 한다. 우울증은 주로 자가극복을 위한 책이고, ADHD 는 이해를 위해 조사를 할 참이다. 두드러지는 ADHD에 비해 조용한 ADHD 혹은 ADD 로 분류되는 주의결핍증은 사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진단기준이 모호하며 그만큼 더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결단코, 두드러져보이는 ADHD 에 비해 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케어하기 힘들다. 행동양식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고 드러나보여도 지극히 정상인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다. 게다가 사실 나는 주요우울장애가 더 심각한 문제다보니. ADHD 에 대한 방대한 자기보고서 쯤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사실 매우 들떴고, 의욕충만하며, 주특기인 집요함을 발휘할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다. 기왕이면, 외국 학술지며 최근의 연구결과와 국내 발표/번역 된 서적과 주요 신문기사들을 수집해야 한다. 논문 쪽이 더 급하지만 말이다.

 

 

 자야할 시간을 훨씬 넘은 시각, 또 음식을 생각한다. 매콤한 국물이 넉넉한 라볶이/떡볶이를 먹고 싶다. 기왕이면 김밥천국이나 신당동 즉석 떡볶이 판으로. 그리고 조개구이/조개찜, 해물찜 같은 것이 먹고 싶다. 순두부찌개. 그리고 지난 번 먹었던 가마로 닭강정, 참 맛있었지. 거기에 사다 둔 더 건강한 햄 비엔나를 문어모양으로 볶아서 맥주. 음, 좋아. 달콤한 갈비살구이, 오뎅탕, 그리고 꼬지세트. 아스파라거스와 삼겹살, 닭가슴살, 양꼬치. 그것도 아니면 짬뽕국물.

 내일은 이 중 무엇이라도 반드시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한 두 가지 하고-  푹 쉴 테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투병기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년 10월 18일 일기  (0) 2014.05.12
2013년 10월 15일 일기  (0) 2014.05.11
2013년 10월 13일 일기  (0) 2014.05.10
2013년 10월 11일 일기  (0) 2014.05.09
2013년 10월 10일 일기 -2  (0) 2014.05.08
2013년 10월 10일 일기  (0) 2014.02.18
Write your message and submit
« PREV : 1 : ···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 : 82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