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1일 일기

Posted 2014.05.09 16:21

이 괴로움도 지나갈 것이다, 지나고야 만다. 매일이, 한 주가, 한 달이 쉽게 지나가고 있는데도 내게는 하루가 몹시도 길고 고단하다. 요즘은 통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어제는 맥주 한 캔을 따서 마땅한 안주도 없이 내내 책을 읽었다. 운동을 하러 나갈 기력이 없어서. 아니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아서. 종일 조바심이 나고, 이유없이 불안하고, 갑갑하고 그랬다. 일찌감치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잠에 들기까지 오랜 시간을 뒤척이고, 오랫동안 꿈을 꾸고, 헉 하고 숨을 몰아쉬며 새벽녘 놀란 듯 잠을 깨었다. 무거운 몸, 피곤한 머리, 기력이 쇠진한 내장. 선잠에 들었다 아침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약을 삼킨다. 아침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밥을 먹기보다 약을 먹는 것이 쉽다. 약을 먹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잠은 오지 앉지만 그저 눈을 감고 누워 끝없이 생각을 늘어놓는다.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를 않았다. 움직일라 치면 구역질이 났다. 하루내내 목 한쪽이 잔뜩 부어 아프다. 역류성 식도염이 또 도졌나보다. 먹고 자면 안되는데, 늘 약 먹기 전후로 간식을 해서 그렇다.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물면서도 한가지 일을 못하고 산만하다. 이것을 하다가 결정을 못내리고 무언가 부담스러우면 즉시 자리를 벗어나 다른 일을 기웃거린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나 자신을 관찰하고 있노라니. 왜 이러고 있나 싶다. 

 저녁 약속이 취소된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책을 집어든다. 아직도 알라딘에서는 주문한 책이 도착하지 않았고, 열린 책들 세계문학 앱은 170권을 20만원에 올려놓았고, 옷을 사고 싶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거울을 보며 괴물, 이라고 속엣말을 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책을 읽으며 지내기만 하는 것이 결코 내게 좋지 않은 것을 안다. 

 아 이 마음, 이 괴로움. 나는 좀체 이 우울감이 이 갑갑함이 눈물이 치솟는 괴로움이, 약 때문인 것 같지 않다. 마음 속으로 수십 수백번 - 도움을 청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머리가 내게 제제를 가한다. 충동을 조절하는 약이 내게는 이런 때에 작용한다. 내가 약해질 때. 한 없이 무너질 때. 그를 부를 수 없다. 

 그의 말들이 재생되고, 나는 입을 다문다. 그의 말대로 - 나는 늘 이랬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도, 헤어지고 났을 때도, 나는 늘 이런 식으로 비련의 주인공을 자처했다. 나의 서술을 믿지 않는다 했던 그의 말을 떠올린다. 그는 정당했고, 나는 비겁했다. 

 벌써 내일이 토요일, 이제 그만두는 것이 확정된 일터로 출근한다는 것이 몹시도 두렵고. 몇 번이 남았을 지 모르는 주일이 무섭다. 책임과 죄책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소속을 잃고, 유대를 상실한 채 떠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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