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0일 일기 -2

Posted 2014.05.08 16:21

어제 저녁에는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한 몸으로, 오빠와 함께 저녁을 지어먹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었다. 우리는 참 대화가 없는 남매라 생각했는데, 실은 내가 말을 뚝뚝 끊어먹는 탓이다. 궁시렁 거리듯 걸어오거나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거나 오빠는 거의 항상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오지만 내가 하는 대답이라곤 응, 아니, 알겠어, 같은 단답형의 대답이 전부다. 맞장구를 쳐주지도, 먼저 무얼 물어봐주지도 않으니 말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냉동실에서 꺼낸 돈까스를 해동시키고, 찜하듯 둥근 팬을 덮어 속까지 익히면서, 겉이 바삭하도록 굽는 자취 7년차 남정네. 먹기좋게 썰며 탄 부분을 떼어내고, 깨끗한 접시에 옮기고. 그런 일들을 묵묵히 내색도 없이 한다. 말을 참 잘하는 순한 사람인데, 집에서 나와 있을 때는 좀체 대화를 못한다. 저녁무렵 집에 들어온 나는 거실 티비가 평소와는 다른 화면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들어왔다는 신호만 할 뿐, 옷을 갈아입고 씻고, 정리하는 동안 저게 뭐냐 왜 그러냐 한마디도 묻지를 않았다. 오빠는 혼잣말처럼 컴퓨터에 받아둔 영화이야기를 중얼거린다. '컨저링'이라는 공포영화를 보고 싶다며 지난 번 함께 저녁을 먹을 때 내가 흘리듯 했던 말을 잊지 않고 구해놓은 것이다. 요령좋게 티비와 자기 컴퓨터를 연결시켜놓고는- 저녁을 준비하면서 내게 결국 먼저 말한다. 야 컨저링 받아놨는데 보든가. 이 다정하고 순한 오빠는, 답지않게 늘 신경질을 부린다. 나는 그저 신난 말투로 어 볼래, 하고는 리모컨을 들고 티비 앞에 앉는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저녁 먹고 마트 갈래? 쌀도 없고 물도 없어.

 밥을 먹으며 공포영화를 본다. 웃기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식사는 금방 끝이 나고, 뭐라 맥락도 없이 주섬주섬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멀리 잠실에 있는 홈플러스엘 가서 쌀이며 물, 라면, 김, 이런 것들을 산다.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오빠가 세계맥주 4캔 만원 행사를 지나다가 말도 없이 맥주코너를 들어선다. 7-8월 내내 맥주 한 두캔을 마시고서야 잠이 들던 나를 알아서라는 걸, 안다. 야 니는 맨날천날 뭔 맥주를 그래 마시노, 살찐다이. 오후 늦게 방에 들어서던 내 뒤통수에 대고 오빠가 던진 말에 나는 잠이 안와서 그래, 했었다. 오빠가 한 마디 더 붙여서 잠이 안온다고?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오빠도 더 묻지 않았다. 근래 내 책상에 뒹구는 약봉투며, 약봉지가 굴러다니는 걸 오빠가 못봤을 리 없다는 걸 안다. 서로의 방에 웬만해선 출입하지 않는 게 원칙처럼 되어 있지만 간혹 줄자나 펜, 테이프, 화장솜 같은 게 필요하면 곧잘 들어오곤 했으니 말이다. 병원엘 다닌다는 것 정도는 눈치챈 것 같지만 여전히 물어오지도, 나 역시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다.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에 기대서 비겁하고 소심하게 숨는다. 속으로는 온갖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인데도, 왜 그런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사는 게 힘든 건 일하는 오빠도 마찬가지일텐데, 유독 별스럽고 유난스러운 게 괜시리 민망하고 미안하다. 어릴적부터 그랬다. 나는 유난스러운 데가 있었고 그렇게 예민하고 까다로웠다.

 장을 보고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다시 영화를 본다. 오빠가 과일을 가져와 접시에 깎아 놓는다. 나는 밉살스럽게 깎아둔 과일을 홀랑 집어먹는다. 한참 영화를 보다, 옷을 갈아입곤 운동을 하러 나갔다. 9시 반. 내가 나가고 나서 오빠는 영화를 껐을테다. 나 때문에 본 거지,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며칠만에 달린 탓에 몸이 버겁다. 기록은 늘 제자리다. 1km 당 7분 30초, 5km 하고 650m 를 더 달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리면 좋으련만, 호흡을 자꾸만 놓치고 속도를 놓친다. 바람결에서 나는 또 그의 향기를 맡고 말았다. 향이라는 것도 음악이나 색깔을 떠올리듯이 머릿속에서 살려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와 인연이 아닌 사람. 노랫말 한 구절이 떠오르고 나는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이 되어 앞으로 내달린다. 그것은 늘 그가 내게 단정적으로 말하던 문장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판사의 판결처럼 내 가슴에 내리쳐지곤 했던 말이다. 너랑 나는 같이 갈 수 없어. 우린 안 돼. 그의 말 어느 것도 나는 잊지 않았다. 그를 미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지만 나는 늘 그사람을 아파할 것이다. 냉정하게, 단호하게 다른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다- 진실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에게는 내가 아니었던 것이고, 나로는 안 되었던 것이고, 그래서 떠난 것이다. 그의 전 연인 때문도 아니고, 그의 상황 때문도 아니고,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고, 그저. 사랑할 수 없었던 것 뿐이다. 아무리, 좋아할 만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기호에 부합하더라도. 그런 객관적인 조건들과 사랑은 결국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머리를 이긴다. 때로 머리를 속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결국에는 승리하고 만다. 최종적으로는 그의 자상함과 다정함에 의지해 이겨내는 하루하루.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이 아니기에 나는 결국에는 아프고 말 것이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약한 내 자신이 문제일 뿐. 

 다시, 내 눈에는 반짝반짝 빛이나는 그의 옛 연인의 영상이 어른거린다. 왜, 항상 내가 이렇게 약해질 때 그녀의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인지. 내가 좋아하던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따뜻함이, 삶을 향한 생기들을 내가 여전히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모든 것들을 헤아리고, 그녀를 평생 못 잊을거라던 그의 말들이 재생되고, 그리고, 한참 그 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빛이 어둠을 짙게 하듯이 나는 더욱 어둠 속에 침잠하는 것이다. 그러나 눈물조차 나지 않는 나는, 어찌된 모양인지. 그 누구도 밉지 않고, 원망스럽지도 않은 나는 그래서 좀체 슬플 수 가 없는 것이 가엾다. 

 어제- 함께한 나래는 언니, 힘들어도 좋으니 나도 언니처럼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해봤으면 좋겠어요, 했다. 이 우중충하고 어두운 일기를 두고도 참 예쁜 말을 했다. 언니 저는 언니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일기라는 걸 알았을 때도-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렇게 예쁘게 생각할 수 있다니 하고 생각했구요. 언젠가 수정이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네 글을 읽고 있으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했던가.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한지. 아무튼, 나는 그런 나래에게 빙긋 웃어보이며 보기엔 좋아보여도 하나도 좋지 않다했다. 사랑은, 서로 주고 받을 때 행복한 거다. 글은 과장되고 한결 포장된 것이라 나의 이 마음들이 어떤 애절한 사랑처럼 보일만도 하겠지만, 실상은 그저 찌질거리는 못난이 바보 집착녀 아니겠나. 그래도 어쩌나, 사랑의 마음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서로 행복하고 즐거운, 기쁨으로 가득한 사랑을 해- 서로가 서로를 통해 성장하게 되는 사랑 말이야. 그게 지혜롭고 현명한 거야, 나는 사랑을 몰라, 하는 말은 마음으로 삼킨다.  

 

 종일 책을 고르고 구경하고 서평을 읽고, 장바구니에 담고. 결국은 잔뜩 사버리고 말았다. 결제를 하고 보니 원래 사려던 고전은 없다. 익히 들어 상식처럼 알아야할 것 같은 책이지만 실은 안 읽은, 그런 책들을 이번 기회에 다 읽어야지, 상식은 갖춘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나의 지적 열등감을 무척이나 건드린 모양이다. 읽을 책이 많아져 기쁘면서도, 아직 한 달의 3분의 1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적자를 내다보는 통장 잔고에 뜨악한 기분이다. 와 나 미쳤네. 이상하다. 매달 50만원을 꼬박 저축해도 돈이 남아야 하건만 적금은 고작 20이고 밖에서 밥도 안 사먹는데 왜 나의 잔고는 늘 적자인가. 가계부를 써보기도 했지만- 답이 안나온다. 늘 비슷하게 생활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 씀씀이가 버는 만큼 커져있더라. 처음부터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묶어놨어야 하는 것을 있는 돈이라 생각하고 미리 묶어놓아서 그렇다. 많이 벌어야 하는 게 아니라, 안 써야 하는 거다. 아이고. 미친년.

 이런 생각을 해도 필요하다 싶은 건 사고 먹고 싶은 건 먹고, 하고 싶은 건 하면서 다니겠지. 복에 겨웠구나 나도. 고만 징징대고 열심히 좀 살아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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