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8일

Posted 2014.02.17 13:43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하루를 보냈다. 일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해가 중천에 닿을 즈음해서 일어났다. 해치워야할 또 하루가 주어졌다. 집 안에 있는 주제에 무엇을 할 지 갈피를 못잡고 이랬다 저랬다 한다. 과일로 끼니를 떼우고 책을 집어든다. 철학의 개념과 주요문제. 백종현 교수가 쓴 철학 입문서다. 서양철학사를 읽으며 누가 무슨 말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지식으로 쑤셔 넣어봤자,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면 철학함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백교수의 문장들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여과없이, 학문함의 자세를 꼬집고 그렇다면 과연 철학이 무엇인가를 상세하고 명료하게 써 내려 간다. 글의 짜임이 좋고, 군더더기가 없고, 구성이 훌륭하다. 이남인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는데, 서울대 교수님들은 다 이렇게 글솜씨가 좋은걸까나. 

 내 머릿속은 시종 시끌벅적한 카페처럼 시끄럽다. 책을 읽는 중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내가, 26년을 살면서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다는 사실이 이제와보니 참 놀랍기만 하다. 책을 읽으며 책장의 책들을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나면 무엇을 읽어야지, 하면서 역사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고전문학을 떠올리고, 다시 신학책들을 떠올린다. 한 1년 간,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도서관 한 구석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본다. 백수의 시간을 누려야겠노라 다시금 다짐한다. 오전시간에만 일하는 구인광고도 있었으니- . 아니다, 올해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 읽고, 여행 다니고, 치료받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을 다니고, 이글루스 블로그를 재개하고, 조금씩 삶에 대한 힘을 키워나가련다.

 밥을 먹고, 잠을자고, 운동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주치의 선생님의 약속대로 약 덕분에 잠드는 수고가 줄었다. 일어나고, 밥을 챙겨먹고 운동을 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아니라 부인해봤지만 시인하자면 그렇다. 밥을 먹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밥 먹는 행위가 관계와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관계의 부재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홀로 밥먹는 일'을 질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올바로 지적한다. 니가 너와 관계하려고 하지 않는거야.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내 팽개치려고 하는 거지. 그의 정당한 비판이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치료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 그에게도 말한 바 있지만 - 이 전의 나의 삶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기연민과 우울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는 뜻이고, 나를 내팽개치는 것을 끝낸다는 뜻이고, 내 삶에 부정어법이 아닌 긍정의 언어를 채운다는 듯이다. 스스로를 위해서 밥을 잘 챙겨먹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일이다. 내가 밥을 먹지 않았던 것은, 차려주는 사람이 없어서나 귀찮아서나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혹은 먹을 것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배가 고픈 나를 방치해두고, 무기력과 우울을 핑계로 나 자신을 널부러뜨리는 것이 편했다. 매 끼를 챙겨먹는 것마저도 나에게는 도전이구나. 삶을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배우는 기분이다. 

 춤을 추고 싶다. 춤을 배워보고 싶다. 내 이 몸이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나를 드러내는 몸짓들. 에너지로 똘똘뭉쳐있고, 가슴 속의 열망과 농축된 감정들이 녹아진 시간예술. 늘 몸치라 말하며 몸 움직이는 일을 어설퍼하며 피했지만 솔직히는 춤을 좋아한다.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몸으로 익히는 기술들, 내 몸뚱아리만 있으면 되는 그런 능력들을 좋아한다. 피아노를 치는 일이나, 무술을 배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되도록 격렬한 것을 좋아한다. 러닝이 좋은 이유는 전력을 다해 질주할 수 있기 때문이고, 온 몸의 근육이 다 깨어나기 때문이고, 심장박동이 전신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춤추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숨이 멎는 것 같다. 언젠가 그런 걸 배워볼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늘 생각하지만, 예술분야는 너무 비싼 취미다.

 그러니 독서. 왼종일 앉아 독서를 했을 뿐인데, 다른 날 보다 견디기가 수월하다. 당분간은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는 이런 데 몰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괜찮으냐면 그런 것은 아니다. 울기도 하고, 화를 내고 싶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 얼굴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기력과 함께 찾아드는 슬픈 생각들, 특히 사랑에 관련한 산란한 생각들이 괴롭다. 유리에 베인 것처럼 차고 날카롭게 나의 가슴을 찌르고 사라진다. 이것 역시도 자기연민을 위한 집착임을 안다. 아무 감정도 없이 흘려보낸다. 가슴 한 쪽이 시큰하게 아프지만, 죽을 것같이 아프지는 않다. 

 왜 돈을 주고 상담사와 계약을 맺는지 깨달아졌다. 계약으로 묶인 관계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가 있다. 신뢰를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이 적잖이 씁쓸한 일이긴 하지만- 나와 같이 치료가 필요한 이에게 지지기반은 치료의 토대이므로 절대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쉽사리 부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하거나, 무조건적으로 내 이야기와 감정을 받아내는 것, 게다가 이해와 공감 적절한 조언. 이 모든 행위에는 관심과 애정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든다. 배우자 격이 아니고서야 어려운 일이다. 편지와 선물을 준비해서 정식으로 몇명의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볼까도 고민했다. 정기적으로 나와 만나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어줄 수 있느냐고. 대화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곁에서 시간을 보내주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렇게 해주겠느냐고. 그런 생각들을 늘어놓다보니 내가 얼마나 인간관계에 미숙한지를 깨달았다. 이런 부탁을 격식을 차려 청하면, 상대방에게는 부담과 책임, 의무감만 들 뿐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자율적 의지를 바탕으로한 지지와 격려, 애정, 관심. 소속감과 유대감, 그런 것들이지 어떤 계약관계가 아닌 것이다. 

 오늘 하루를 완수했다. 다시 내일이 온다. 부정적인 생각만큼이나 긍정적인 생각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 내가 끌어안는 '나'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히자고 마음을 다져본다. 태양을 사랑하는 소녀, 라는 시공사의 어린이문학 책을 떠올리며 잠드는 요즘이다. 빛이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마음마저도 환하게 비춰줄 만큼 밝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곁에 있으면 기운이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칭호들이 나에게도 칭해졌던 때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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