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4일 일기

Posted 2014.02.14 13:40

  병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 좀 나아져보자고 단단히 마음 먹고 치료를 결심했는데, 약 먹는 것 전보다 운동을 많이하는 것 외에 달라진 것이 없어서일까. 상태를 설명하고, 약을 조절하고, 늘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듣는다. 주사를 맞고, 약을 받고, 계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적잖이 무겁다. 집을 나설 때만해도 청명한 가을 날이며,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며, 그래 참 좋다 - 이 가을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살만하다 조금은 개운한 마음이었는데. 마음에 얼룩덜룩 때가 탄 것 같다. 갈 때마다 비싼 병원비, 상담치료를 받지 않기로 한 데에 대한 부담감,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는 ADD, 그리고 그에 처치되는 약물. 그런 것들이 나를 짓누른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잘 모르겠다. 스스로가 낯설고, 순간순간이 당황스럽다. 지금도 꼭 그렇다. 어찌해야할지를 모르겠고,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뭘 하고 있었던건지, 뭘해야하는건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내가 왜 이러는지. 

 화요일 오후 종로 3가 거리에서 '혼란상태'를 겪었다. 이런적이 없었는데 싶어 너무도 당황스러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절망스럽고 난감했다. 오도가도 못한 채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벌써 수십번은 더 다녔던 거리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깨어있지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내 눈 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며, 돌아가는 세상 어느 것 하나 나와는 연결되어 있지도 닿아있지도 않았다. 근래 꾸던 꿈과 닮았더랬다. 내용보다는 인상으로 남는 꿈들이다. 몹시도 곤란한 상황에 처했는데, 도움을 청할 곳은 없고, 나 혼자 이리저리 애를 쓰고, 무엇도 해결되지 못한 채 공포와 당혹스러움과 고통에 몸부림 친다. 그게 지금 내가 인식하고 있는 나의 현재다.

 객관적으로는 그렇다. 경제적 부채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일절 도움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더 뻔뻔하고 당당하게 지원을 받으면 된다. 이도 저도 선택하지 않고 있으면서 왜 끙끙대고 있는걸까? 내가 보호자를 원하고 있어서다. 재정적 지원은 물론이고 심정적인 지원을 든든히 하는 보호자. 내가 치료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치료에 동의하고, 그 과정에 함께하고, 격려하는 보호자. 병원비에 내 법적 보호자의 카드를 계속 쓰는 건- 안정과 지지에 대한 나의 반항적 호소다. 그러면서도 나는 같이 살고 있는 친오빠에게도 내가 겪는 어려움을 어느 것 하나 말하지 못했다. 잠을 못자 매일 술에 의지할 때 핀잔으로 던지는 그의 말을 걱정보다는 비꼬는 것, 한심스럽게 나를 보는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운동하는 길에 같이 나서주는 그의 은근한 다정함을 나는 이런 식으로 낯설어하며 외면해버렸다. 도움이 필요한 것은 나면서,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고 손길이 뻗어주기만을 기다리고, 그것도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뿌리쳐버리는 오만을 부린다. 안동 집이 낯설어진 후로 나는 좀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찾아가지도 않는다. 걷다가 세상이 발 밑부터 내려앉는 기분이 들 때면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하는 말이 입 속에서 맴돌곤 하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엄마는 없다. 진로든, 애인문제든,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 관한 것이든, 내가 겪는 사람들이든, 내 가까운 주변의 몇몇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우리 가족은 모른다. 나에 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어쩔 수 없는 30%. 보통사람들에게는 까짓거,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하고 넘겨버릴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나를 몹시 괴롭게 하는 것. 의사선생님은 그것이 여전히 나의 체력과 약물로 조절하는 생활패턴 등이 차지하는 70%를 만들지 못해서라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활동량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것인지. 내가 여전히 몸이 요구하는 것보다 적게 먹고 있는 것인지. 정말로 내가, 보통수준에 비해 견딜 체력이 부족한지. 비슷하게 먹고,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치료를 시작하고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무리하고 있는 것도 같은데.

 급해지지 말자, 한 번에 하나씩, 이제 시작이라고, 1년이든 2년이든 한 번 견뎌보자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보통의 마음을 누리는 것은 순간. 금새 삶이 권태롭고 하잘 것 없고 허무하다. 세상을 모두 가진 줄 알았던 어린시절과 모두가 특별해지기 위해 발버둥치던 10대,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 특별해지기보다는 평범한 소시민에 자족하는 게 삶의 순리인 양 하는 20-30대, 나와 내 주변인과 내가 닿아본 적 없는 타인의 삶들이 한꺼번에 섞인다. 나만 혼자 성장하지 못해서, 이렇게 사춘기를 겪고 있어 그런거라니. 내가 덜 자랐고 덜 성숙해서 '평범' 속에 섞어 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니. 난감하고, 갑갑하다.

 그나마 붙잡고 있던 생활들도 내게는 버거운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 힘들 때 그를 보호자 마냥 찾아 의지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그는 그의 삶이 있는 것인데. 그저- 좋은 날 만나 좋은 곳을 함께 즐기고, 좋은 것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풍성하고 다채로운- 멋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자고 해놓고서 내쪽에서 먼저 어겨버렸다. 혼동했다고 변명해본다. 난 무엇을 원했던 걸까, 데이트 메이트? 배타성을 보장하지 않는대신 자유로울 수 있는 연애?, 그도 아니면 그 무엇도 남지않도록 불완전 연소를 완전한 연소로 소진하는 것. 아주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이 내려진다.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관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썼던 사실들. 씁쓸하고 달콤하고 슬프지만, 아프지 않다. 마음 한 구석에 집요하게 자리하던 미련이 사그라드는 소리를 숨죽여 듣는다.

 어린 마음. 양가감정. 이런 것들에도, 덤덤해진 가슴을 편안하게 여긴다. 사실은 괜찮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있다는 것이 몹시도 기뻐서 그렇다.

 숨을 고르고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갈 결심을 한다. 조금은- 나아지는 방향으로 내딛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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