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혁

정보
피아노 | - | 출생: 1984.07.25
장르
-
대표곡
Chop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 I.Allegro maestoso

 

 그를 처음 본 것은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였다. 어느 채널에선가, 새벽 즈음 생중계를 해 주었더랬다. 심야시간에 틀어주는 명작 영화나 뮤지컬, 무용 같은 것들을 보는 것이 습관이었던 나는 아마 그 무렵 이미 불면증이 시작되었던 모양으로 그 날도 으레 하던 버릇대로 티비 채널을 돌리는 중이었다.

 운명처럼 그랬다. 외국인으로 들어찬 무대 위에 하얀 얼굴의 동양 남학생이 올라섰다.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1악장의 첫음을 내려치자 마자, 나는 완전히 마음을 사로잡혔다. 그가 연주하는 협주곡은 익히 알던 곡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충격으로 다가왔다. 힘이나 테크닉, 음악적 표현력들 모두 인상적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빛깔이 특별했다. 얼마나 특별했나 하면, 몇 년이 지나고 또 어느 채널에서 임동혁 연주 실황을 틀어준 일이 있는데 채널이 돌아가는 그 잠시의 순간에 들린 음색만으로 임동혁 연주인 걸 알아채고 다시 채널을 돌렸을 정도(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순전히 내 팬심에서 기인한 작요일 가능성도 농후하다)랄까.

 그 날 새벽 그는 3위에 입상을 했지만 수상을 거부했다. 청중들에게 있어 그의 항의는 정당한 것이었다. 예선에서부터 그의 연주를 들은 청중들에게 이미 이 피아니스트가 독보적으로 자리매김한 탓이었다. 나는 그 또한 그가 가진 고유의 색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연주는 청중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천재의 재능이라고 한다면, 또 그것이 연주자로서의 자질에 필요충분조건이라면 퀸 엘리자베스에서 그가 들려준 연주는 수상을 진작에 넘어선 것이었다. 예선을 거친 후 당시, 벨지움의 <르 수아>에서도 그의 연주에 대해 "무한한 표현의 수단과 해석의 자유를 갖추고 있는" 것이라 평가하며 극찬했더랬다. 처음 그가 수상을 거부했을 때 그것은 정당하고 명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그럴만하다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은 신동의 치기어린 오만과 허영이라 치부되지 않았다. 그의 수상거부는 연주자로서의 명예와 직결되어 있었다. 이미 부조니 콩쿨에서 충격을 가져다 준 후, 2001년 롱-티보 콩쿨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는 그에게 콩쿨은 수상 자체보다는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하는 데 더 의의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 때, 그는 그가 1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2위를 수상한 연주자의 연주가 상을 받을만하지 않았음에도 2위를 거머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었다. 2위인 중국인 연주자의 사사가 1위와 같은 사람이었고, 그 사사가 음악계에서 매우 거장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입김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하필 결선에서 그 세 연주자 모두 같은 곡을 연주한 탓에 연주자 간의 차이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매우 공공연하게 쉬쉬되고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룰', 그러나 무시할 경우 잘못되면 매장을 각오해야하는 룰이 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재정 후원의 이유로, 그도 아니면 연줄을 이유로 예술계에는 각종 비리와 부정이 난무한다. 대개는 어느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나오기 때문에 고만고만 한데서 제일 빛깔 좋은 놈을 고른다는 소리가 있을만큼, 그 룰은 매우 오랜 동안 묵인되어 왔다. 그것이 세계 무대라고 다를 바는 없었나 보다. 아무렴, 내가 나갔던 리코더 대회에서도 심사위원들이 모여 앉아 '비슷하면 악기보고 고른다'고 떠들고 있는 걸 똑똑히 들은 일이 있는 걸. 어찌되었든, 수상자 본인의 수상거부는 잠깐 힘을 얻는 듯 하다가 금세 판도를 달리했다. 그를 지원하는 음악계의 큰손들과 음악가들의 입장 표명, 팬들의 지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결과에 승복할 줄 모르는 오만하고 불손한 인물로 물매를 맞고 매장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전적은 괘씸죄로 적용되어 지금까지도 그에게 족쇄처럼 따라붙는 모양이다. 그 일이 화제가 되어 적어도 한국에서는 신동으로, 천재로,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국제 무대에서의 입지는 그다지 확고하지 않은 듯 하다는 인상이 있는 걸 보면 여파와 후유증이 꽤나 크고 길었던 것 같다.

 팬의 입장에서, 그 때 일을 두고 말하라면 글쎄.. 그가 3위 수상 거부를 한 것도 정당하고, 3위를 수상한 것도 이해가 된다. 콩쿨은 어디까지나 수상을 가리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주에 대한 일정한 심사 기준이 있다. 심사위원들이 아무리 편파적이라고 해도, 그 룰을 깡그리 무시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임동혁의 연주는 비견할 데 없이 빼어나고 독보적이었지만 그의 개성이 명확히 드러난 것은 콩쿨의 성격과 다소 맞지 않았다. 연주 실황 때 오케스트가 그의 연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그 덕에 연주의 고유성이나 곡 해석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급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머리로 떠올리라면 떠올릴 수 있을만큼 그의 연주는 수십 수백번 다시 들었다. 아무리 다시 들어도 그 점만은 참 아쉽다. 그가 연주한 곡이 피아노 '협주곡'이었다는 것은, 주된 악기가 '피아노'이긴 하지만 협주하는 다른 악기와의 조화가 전체 음악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독주 연주자가 빼어난 실력을 갖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케스트라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니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미숙 때문이 아니냐고 한다면 뭐라 할말은 없다. 그날, 세 연주자가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어느 한 연주자와의 협연이 유독 잘 맞아 떨어진 탓에 우열이 가려진 것이니 순전히 운이 나빴다고 말한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는 것 없고 팬심으로 충만한 나로서도, 그 날 1등을 한 연주자는 1등을 할 만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콩쿨이었기 때문이다. 분하고 억울하기는 하지만, 임동혁이 3위를 수상했더라도 완전히 불명예스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세간이 1위와 3위 수상자에 대해 주목했기 때문이다. <르 수아>는 2위 수상자에 대해 '발전해야할 점이 많다'는 우회적 표현으로 다 이야기 했더랬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콩쿨은 그 자체로 연주자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지는 않는다. 좋은 기회이고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 점을 임동혁이 몰랐을 리 없다. 나는 임동혁이 3위 수상거부가 승부에 연연하는 우리나라의 사람들의 승부근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콩쿨을 너머 연주자로서 무대 위에 섰고,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택한 일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선택을 온전히 지지한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것들은 다 후일담이고, 각설하고 요약하자면. '그 날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그가 연주한 곡 모두를 인터넷을 뒤져가며 찾아 들었고, 치지도 못할 곡의 악보를 사재곤 했다. 그의 어마어마한 재능과 더불어 빼어난 외모는 한국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아이돌 못지 않은 팬덤을 형성하게 했다. 2004년, 내가 막 고등학생이 될 무렵. 한국에서 그의 첫 리사이틀이 열렸을 때는 예매가 풀리던 날 '10초' 만에 좋은 좌석이 모두 팔렸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B열 4번째줄 14번 쯤?..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매우 가깝고도 좋은 자리를 선점했고, 리사이틀이 열리는 날까지 적은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무서운 것도 모르고 홀로 서울을 왔다. 몇 달 전부터 밥은 어디서 먹고, 연주회장까지 가는 길이며, 마치고 나서의 여정이며, 그의 프로그램곡을 공부하고, 혹시나 실수라도 할까 공연매너며, 꼼꼼하게 노트에 적어가면서 첫 리사이틀을 손꼽아 기다렸다. 뭣도 모르고, 정보도 충분치 않은 시골소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 떠올려도 그 때 참 행복했다. 그렇게 기다린 그의 첫 리사이틀에서 그는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고, 관중은 열광했다. 그에 화답하듯 그는 연거푸 5번의 커튼콜에 응했다. 마지막 커튼콜이 여전히 뜨거웠고, 곳곳에서 기립했고, 그리고 그가 무대로 성큼성큼 걸어나와서 좌중에 인사를 하고, 인사를 하고 일어서면서 피아노 뚜껑을 덮었고, 손을 짚어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고, 웃었고, 무대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내 평생에 다시 없을 마음을 그에게 모두 내주기로 했다. 길고긴 짝사랑의 시작이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예정이다.

 요상스럽게도, 그의 첫 리사이틀이 환상적으로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뜨거운 관중들의 몰상식한 행동들이나, 그러면서도 음악을 좀 안다는 듯 재는 태도들이며(템포 루바토가 어땠느니, 음 어디가 미스였느니..), 120분의 연주에 지친 연주자에게 무리한 커튼콜(물론 행복했지만)을 요청하는 것이나, 심지어 그 이후에 팬사인회까지 진행하는 일정들에 나는 좀 물렸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그가 발표한 음반이나 디토 활동, 리사이틀에 지속적으로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굳이' 리사이틀을 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음반이나 실황 영상을 구해다 미친 듯이 듣기는 했지만. 아 내가 2008년 리사이틀에 갔었던가, 표를 못 구해서 안갔던가. 왜 기억이 안나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프로그램을 달달 외울정도로 공부했던 기억은 있는데 무대에서 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안 갔던 것 같기도 하고. ....;; 뭐지?.. 나 되게 낯설다.

 그 후로도 디토의 공연이나 용재오닐과의 네이버온뮤직 생중계나 이런 것들은 참 운명처럼 잘 찾아듣곤 했다. TV를 켜면 디토가 나온다거나, 라디오를 듣는데 임동혁군이 나와서 '유지태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데 기분 나쁘다'고 한다거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임동혁군이 나와서 엄청 재수없는 천재 역을 까메오로 했다던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그냥, 내 팬심이, 내 사랑이 그에 대한 레이더를 항상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일텐데도 그냥, 다 운명처럼 그랬다. 그의 피아노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내가 대견하고, 그 연주자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행복하고.

 2014년 2월 18일 8시. 그의 리사이틀이 있다는 것을 안 건 2014년 2월 17일 오후 어느 때였다. 우연히 들어간 클럽발코니에서 정말 우연히, 어라 리사이틀을 하네, 내일이야? 선예매 11월? 표 없겠다. 구경이나 할까? 하고 로그인을 했는데 웬걸 B블럭 12열 9번자리가 하나 딱. 비어있는거다. C열 왼쪽 중간 즈음도 두 석 정도 남아있었지만 피아노 건반이 비스듬히 보이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게다가 결제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그간 클럽발코니 매거진을 이메일로 구독하면서 쌓인 포인트가 무려 20600점. 돈도 벌고 있는데 문화생활로 8만원 쓰는 데 인색한 내가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아니 사실은 그런 것들보다 프로그램이 좀 아쉬워서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도 있다. 부조니 샤콘느 연주를 할 때도 안 갔던 내가, 월광이라니, 드뷔시라니. 구성이 너무 의외이기도 하고, 다소 실망스러웠다.(왜 실망스러웠는지는 모르겠다만) 가장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겠다는 그의 말대로 그가 발표한 프로그램은 낯설었다. 너무 대중적인 선곡이었다고 생각한 것같기도 하다. 내가 아는 그의 화려하고 인상적인 모습에 비해 구성이 초라하고 빈약해보였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 생각했다.

 실은 당일 아침까지도 표를 구매하지 않았었다. 늦잠을 자 행색도 흉하고(요즘은 일어나서 세수하고 기본 화장만 한 후 대충 눈에 보이는 거 입고 나옴) 감기기운에 피로가 더해져 (졸까봐^^) 걱정스러웠다. 어지간히 고민이 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좋은 자리를 점했지만  프로그램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하고 가는 터라 안심이 안되기도 했다.

 

 기대했던대로 좋았던, 혹은 조금 아쉬운. 1부였다. 무대 위에 오른 연주자 만큼이나 관중들도 첫 연주 시작 전에는 긴장했다. 조용하고 느린 곡이 첫 곡이되니, 연주자보다 관중석의 긴장이 더 고조되었다. 그 긴장감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곡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달빛은 청아했고, 시리고, 샤갈의 그림처럼 꿈꾸듯 했고,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공허했다.

 연주자가 뭔가 지쳤나 걱정스러울 정도로, 전반적으로 자꾸 어딘가 부족하다, 힘이 빠지는 느낌이라 왜?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하고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우고 있었는데 2부 슈베르트 소나타를 듣고나서는 말끔히 정리가 됐다. 장장 40여분 남짓의 소나타의 기승전결이 1부와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2부에 들어서서는 공연장 분위기도 안정되었고, 집중과 몰입이 깊어져 다소 간의 소음에도 관중이 흔들리지 않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곡에 온전히 몰두하는 연주자라니. 슈베르트의 소나타 4개 악장이 각각 목소리를 내면서 온전한 한 곡으로 그려졌음에도 크게는 한 호흡으로 마무리지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었지만 (소심과 무지의 이유로) 박수만 열렬히.

 

 얼마전에, 박경림의 두시의 데이트에 출연한 임동혁이 자신이 슈베르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연주를 들으면서 참, 그렇구나 했다. 10년 전에, 그가 발표한 첫 번째 앨범에 들어 있는 슈베르트 즉흥곡 1번 다단조 1악장이 떠올랐다.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즈음, 폐허로 남은 전쟁의 자리에서, 그 공허와 쓸쓸함의 공간에 피아노 선율이 가득 찬다. 나는 그 장면이 늘 마음에 시리게 남아 울곤 했다. 그리고 이번 슈베르트 소나타는 거기에 어떤 무게가 지긋이 실려있었다.

 인생을 좀 아는, 이라고 말했던 것이 과하지 않다 싶었던 건,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 사인회를 하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얼굴을 못박힌 듯 서서 물끄러미 바라만보다가, 문득 고개를 든 임동혁과 눈이 마주쳤는데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 상태에서 웃어주기라도 했으면 아마 심정지했을거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서. 그러고는 사인회가 끝날 때까지 사인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의 얼굴만 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리가 짙은 어둠에, 침묵에 잠겼다. 소리도 없이 고요한 길을 걸어가는데 뒤늦게 연주회의 여운이 따라붙는다. 아, 달빛. 푸른 새벽녘의 하얀 달빛.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영화 '피아니스트'가 떠오르고, 가 본 일 없는 러시아의 차고 시린 공기를 그리게 된다. 차갑고, 공허하리만치 넓은 공기가 떠오른다. 유리처럼 날카롭고 맑게, 뭉그러짐 없이 오롯이 울리는 소리가. 쓸쓸하고, 먹먹하고, 외롭지만 담담하다. 위태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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