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황정은, 민음사

Posted 2014.01.14 12:21
백의 그림자 - 10점
황정은 지음/민음사

 

 

 

 습관처럼 서점에 갔다가 홀린 듯이 책을 집어 들었다. ‘百의 그림자’. 책을 손에 잡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리고나서 한동안 글의 여운에 잠겨 있었다. 밤산책을 하다가도 주황빛 조명아래 비친 나의 감색 그림자를 물끄러미 보았고, 낮동안의 희미하고 옅은 그림자에 지워진 곳은 없는가 살펴보기도 하였다.

 국내 신진 작가들 중에는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대중의 호평을 얻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오래 남기에는 작품의 무게가 가볍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표현력이나 감성이 빼어난 것이 근래 이름난 작가들의 특성인가보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지만, 일본 소설의 경향을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괜한 기우를 갖게도 된다. 사실, 황정은 작가 역시 ‘百 의 그림자’전에는 서정적이고 어딘가 마른 느낌을 주는 감성 외에는 깊은 인상이 없었다. 우연히 집어든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신춘문예로 등단한 수많은 작가 중 하나로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황동규 시인이나 황지우 시인, 기형도,‘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쓴 아고타 크리스토프, 밀란 쿤데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군더더기 없이 담담한 일상 언어를 사용해 삶의 무게를 묵직하게 실어내면서도 끝까지 호흡을 잃지 않는 작가들이다. 황정은 작가의 ‘百 의 그림자’가 인상 깊었던 것도 이러한 요소들을 때문이었다. 작품의 울림이 깊어 책을 읽고 며칠 그의 문장을 앓았지만, 섣불리 글을 쓸 수 없었다. 누군가 이 책을 접한다면,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아무런 편견이나 선지식 없이 작품과 조우했으면 좋겠다.

 저자가 그려내고 있는 도시의 외곽은 도시의 시민으로 살아가면서도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할 것 같지 않은 오래된 기계들을 고치는, 기계들보다 더 오래된 상가를 배경으로, 이제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이 외롭고 고단하게. 낯익은 일상의 모습을 하고 음직인다.

 도시, 소외, 가난, 노동, 기계. 다소 지루할 법도 한 소재들이 ‘그림자’라는 오브제를 통해 시를 옷 입어 살아난다. 그들의 삶 귀퉁이에서 불쑥 불쑥 솟는 그림자,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끌어당기고 내게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 그림자, 시간이라는 못에 삐죽이 걸린 채 늘어진 그림자. ‘그림자가 일어섰다’는 말을 암호처럼 공유하는 인물들의 대화 안에서 독자는 자신만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림자는 우리의 삶을 질척이게 하는 근심이 되었다가 삶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어 하는 내 안의 이단아가 되었다가 나를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가 되게 하는 무엇이 되었다가 내 존재를 들썩이게 하는 불안이 되었다가 하며 삽시간에 모습을 바꾼다. 그래서 이 그림자를 ‘百 의 그림자'라 이름붙인 것일까. 

 일상 언어에 시의 색체를 입혀 글이 숨 쉬게 하는 것이 작가의 업이라면 ‘百 의 그림자’는 그 사명을 다 해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은, 모두 저마다 마음 깊은 데 엉긴 묵은 덩어리가 작가의 언어를 만나 형태를 부여받고 색을 입고 정체가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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