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0일 화요일

Posted 2014.01.10 22:04

 

 

 상담은 힘들다. 상담사는 '나'를 앞에 놓고 나의 상태를 '보여주는' 수치화된 도식들과 데이터들을 들여다본다. 그것이 마치 '나'를 다 드러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아니라는 건 안다. 이 사람이 나보다는 병에 대해 전문가라는 것도. 그는 아주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작게 한숨을 쉬기도 한다. 나에게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한다. 그가 내게 설명한 내용은 나 자신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우울증이 심하네요. 병동이 있는 병원이었다면 당장 입원하라고 했을 거예요. 주변에서 치료를 권유하지는 않던가요? 이 정도면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인데. 그런가요? 저는 가벼운 우울증이 만성으로 됐다고만 생각했지, 그렇게 심각하다고는 생각 안했어요. 주변에서야 저에 대해 잘 모르니 제가 어떤지 잘 모르죠 그냥 항상 기운이 없네, 우울하네, 어디가 아픈가 보네, 할 뿐이죠. 그래요.. 지금 제일 우선적인 건 우울이랑 자살이네요. 분노나 감정조절 같은 부분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 타인에 대한 기대도 없고, 치료가능성에 대한 희망도 거의 없네요 무기력감도 심하고.. 본인이 이런 상태인데 일상생활은 어떻게 해요? 지금 일 하고 있는 게 있어요? 그게 돼요?  .. 그냥.. 집에 안 있으려고 나가서 걷고, 책 읽고 영화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일도 하고 있어요 잘 하고 있진 않지만.. 할 수 있어서 한다기 보다는 맡은 일이니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 생각하고 해요. 나에게만 관련된 일이면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내가 안해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 안되잖아요.. 맡았으면 해야죠..

 치료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다. 상담사는 그것이 난감하다. 만성인데다, 이 정도 수준의 그래프가 나타나는 사람은 자신도 거의 본 일이 없다고 그런다. 내가 그래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슬쩍 각도를 바꿔버리면서 덧붙인다. 그래프가 들쭉날쭉하죠? 진아씨가 지금 그만큼 불안정하기 때문이에요.

 상담은 피곤하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어버린 내 이야기를 다시해야하는 번거로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난감함,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 다양한 감정의 혼재가 나를 침울하게 한다. 상담사가 아무리, 날 더러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도 와닿지를 않는다. 요즘 세상에서 '성'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내게 떠벌린다고 해도- 나는 되려 '그게 사실이라해도 면죄부가 되진 못해요' 라고 받아친다. 어린 시절 당한 성적 추행을 내 잘못이라 여기는 내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말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나는 벗어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작성해주어야 하는 리포트를 얼마 전에 헤어진 사람이 해주었다는 얘기가 상담사에게는 상당히 의아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괜찮다고, 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탁할 수 있었고, 그 사람도 이런 쪽 문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흔쾌히 응했노라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다, 는 나의 말이 그에게는 어떻게 들렸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버려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나를 보호하고 동시에 학대하고 상처주는 절대적인 명제는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을 나는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마음을 접고, 미련을 털어내었다. 때때로 그를 볼 때나,  여전히 그의 어떤 말들에 나는 무너지고, 있는 자리에서 주저앉을만큼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대체로 나의 감정은 죽은 채로 있다. 울고 싶은 기분은 들지만 울지는 못한다.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함과 고통에 괴로우면서도 나는 다 토해낼 수가 없다. 그것이 더욱 나를 서글프게 한다.

 내게 보이는 친절, 호의, 다정한 말들, 태도, 행동들을-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보일 것이다. 그는 - 어딘가 힘든 곳이 있는 사람들에게 약하니까. 그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ADHD를 가진 자매를 잘 돌봐준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는 왜 그런 말을 하필이면 나에게 하는 걸까. 나는 집착이 심하다. 어떤 물건에 집착을 보인다고 할 때의 그런 집착과는 다른 뜻으로 쓰는 말이다. 나는 어떤 생각에 골몰한다. 한 점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어떤 한 생각이 내게 들어오면 나는 그 생각이 논리와 구조와 시공간을 가지고 점점 자라나기 시작한다. 있지도 않았던 일들조차도 '가능성'이나 '개연성'만으로도 내게는 설득력을 가질 정도로, 나의 생각에 대한 '집착'은 강하다. 그럴 때의 나는, 어떤 영화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순식간에 무기력해졌다. 벤치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어, 곁에 그저 있는 것에 지쳐 떠난 그를 쳐다 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냈다. 남겨졌다거나 버려졌다는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 그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나는 왜 이토록 좌절하고 무기력해하는 것인지. 괜찮다 생각했지만 결국엔 괜찮지 않았던 모양인지. 몇 대의 버스를 더 보내고, 한참 노래를 듣다, 약을 먹고나서 버스에 올랐다. 집이 코 앞이지만 발길을 돌려 멀리 편의점까지 걷는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맥주를 산다. 이런 것을 '의존'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하루가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공부하고, 텍스트를 놓고 이해하기 위해 씨름하는 편이 내게는 훨씬 나았다. 타인의 말들, 말들, 말들. 

 오늘 주치의는 날 더러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포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지난 번에 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마음을 열라고 하니 나는 조금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할 누가 있다는 말인지.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다. 주치의는 아빠와 통화를 한 것이다. 카드 결제 확인 문자가 가자마자 아빠는 또 병원에 전화를 걸어 내가 무슨 진료를 받은 것인지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다. 지난 몇년 간 그래왔듯이. 웃긴건, 몇 천원 정도의 결제에는 감감무소식이다가 5만원이 넘어가면, 문자가 날아가는 즉시 전화부터 온다는 사실이다. 주치의는 그런 아빠와 대화하면서 무슨 판단을 내렸을까. 지금 이 태도로 보아선, 먼 데 딸을 보내놓고 걱정하는 아빠가 있긴 하구나, 이 환자가 마음을 닫았구나, 일까. 

 짜증스럽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라는 둥, 병원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니 다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거라는 둥, 혼자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둥. 걱정하지 말라는 둥. 신앙인이지 않느냐는 둥.

 경멸스럽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단어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현대 사회는 '우울'이라는 단어와 '트라우마'를 남발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우울장애와 보편 인간에게 존재하는 고독으로부터 파생된 우울을 구분하지 못한다. '성인ADHD' 라거나, '양극성장애' '공황장애' 정도의 단어만 붙어도 그것은 '대단히' '특별히' '요주의' 관리가 필요한 정신과적 질환으로 여기면서, '우울'이라는 건 잠시간의 감정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가볍게 치부하고 우습게 여긴다. 우울은 의지의 문제라고 여기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 얼마나 숱하게 들어왔던가. 너는 우울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는 말.

  이제는 우울한 상태가 아닌 상태라는 게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나에게, 침울하고 물 먹은 솜처럼 몸이 가라앉는 이 무기력은 내 의지로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 게 아닌 나에게. 주요우울장애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영혼을 좀먹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를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좌절한다. 벽을 느낀다. 아무리해도 나는 이해받을 수 없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괴로운 건 나 자신인데,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이 우울한 상태로 남아있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지긋지긋하다. 몸서리쳐진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우울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게 폭력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우울감, 무기력증, 절망, 패배, 후회, 자책, 죄책, 불안, 초조, 긴장, 절박.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무엇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어떤 기대도 없음. 신을 만났던 경험조차도 너무나 아득해서 이제는 내게 아무런 호소력도 지니지 못하는 성마른 기분.

 그대들에게 묻는다. 어줍잖게 알은척 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곁에 있어 줄수는 없느냐고. 무엇을 이루어내고 말고는 나중 일이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말해줄 수는 없느냐고. 그대에게 묻는다. 내가 당신에게 의미있는 사람일 수는 없느냐고. 내가 그 의미지워짐으로 말미암아 살 토대를 마련할 수는 없는 것이었느냐고.

 

 

 약을 먹고도, 술을 마시고도 잠이 들지를 못하니 몹시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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