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6점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돌베개

 

  말해져야 하지만 그것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어떤 말로도 충분히 담을 수 없어 감히 이름 붙이지 못하는 일들. 불가피하게 언급해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그 일', '그 곳', '그 때', '그 사람'과 같은 부정어구로 가리켜 보이곤 한다. 눈 감은 채, 귀 막은 채. 실체를 마주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았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살아남음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살아남은 자들은 영웅으로 추앙받곤 하지만, 그들의 왕관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자신이 처한 고통과 비극이 훈장이 된다는 것이 과연 영광일까. 살아남은 자들이 쓴 왕관의 무게는 타인들의 죽음만큼 무겁다. 운이 좋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든, 비열한 방법으로 살아남아냈든, 그들의 살아남음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죽음과 잇대어 있기에 그들의 살아남음이 추앙받을수록 살아남음은 수치가 되고, 그들은 스스로를 비겁자로 낙인 찍는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이들 중 다수가 종국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하다. 언뜻, 수용소의 삶을 이겨낸 이가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수기를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일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다시 그 시간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날로 날카롭게 벼려진다. 좀처럼 낡는 일이 없다. 떠올리는 즉시로 새 것같은 통증을 가한다. 영원에 못 박힌 것처럼 숨쉴 때마다 반복된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모 레비의 수기는 수작이라 칭할 만하다. 한 문장, 토시 하나에도 고통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치즘이 행했던 극악무도한 범죄들이나 수용소 안의 비인간적 질서들을 그린 영화나 문학들 중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상당하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파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더 리더, 안네의 일기, 피아니스트.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비슷한 소재를 주제 삼은 여러 예술 작품들 가운데에서 수기가 갖는 특별한 위치는 그것이 문학의 형태를 지녔으나 실제의 경험이라는 점, 저자가 직접 겪은 일들임에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프리모 레비의 서술에 따라 수용소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눈 앞에 죽음이 대기하는 극도의 긴장과 추위와 배고픔, 헤진 옷과 다 떨어진 신발들. 도둑질, 아첨, 밀거래, 연줄트기가 난무 하는 수용소의 삶은 원초적이고 야만적이지만 사실 수용소 밖의 현 사회에도 비일비재하다. 그 모양새가 세련되게 다듬어져 눈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도리어 존재의 상실에 있다. 무채색의 번호가 이름대신 부여되고, 치수도 구분 되지 않는 옷을 입고, 민머리를 한 채 좁은 숙소 안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한 채 선잠에 드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우리 속의 동물과 같다. 수기를 읽는 내내, 프리모 레비가 제목으로 삼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처절한 외침이 들린다.
 이것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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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잇

    | 2014.01.19 16:17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프리모 레비의 글은 <살아남은 자의 아픔>이란 시집밖에는 읽어 보질 못했는데 소개해주신 책은 제목부터 절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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