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감독 장훈 (2011 / 한국)
출연 신하균,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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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극장가서 본 영화가 내내 머릿속에서 반복재생중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통일성 없이 나열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전쟁의 참혹상에 대한 연민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애국심이 일어난 때문도 아니다. 이득 때문에 생명이 죽었다는 데에 대한 분노어린 정의감 때문도 아니다. 단지, 전쟁을 그린 영화를 편안한 영화관 의자에 앉아 팝콘과 음료수를 먹으며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에 소름이 끼쳐 그렇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있다. 주로 문학이나 심리에서 사용되는 이 말은 가상의 상황에(주로 비극) 몰입하여 자신과의 동일시를 통해 마음에 쌓여있던 불안감, 긴장감 등을 해소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실, 그 주어진 '가상의 상황'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 마치 감정쓰레기 처리장처럼, 내 안에 있는 좋지 않은 응어리를 그 상황에다 던져버리고 자기 자신은 원래 있던 자리로 쏙 빠져 나오는 것이다. 관객은 무엇인가. 그 자리에 있으나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다.
 수전손택이 쓴 타인의 고통은 전쟁과 연민에 대한 일침을 날리고 있다. 그 때 그는 전쟁을 소비하는 현대인의 문화를 꼬집었다. 오늘 날 영화는 계속해서 '더 현실적인' '더 실감나는'을 외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중매체는 생생한 영상과 섬세한 음향효과 그리고 보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들로 도배되어 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신문, 방송광고, 그리고 대로변에 설치된 거대한 광고들이 그렇다. 3D 영화 제작이 흥행하는 이유, 화소가 높고 전문적인 렌즈를 탈부착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눈의 자극을 소비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지를 과잉섭취한 나머지, 진정한 현실을 상실한 현실에 살고 있다. 이것은 기 드보르가 '스펙터클 사회'에서 주장하고자 한 내용의 핵심이다. 수전손택은 그의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전쟁을 연민으로 소비함으로써 값싼 전쟁체험을 하고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대중의 태도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결국에는 '그 사람들'과 '우리'라는 경계선을 그어놓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전쟁에 명목상 관심을 보이는 척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는 나와 동떨어져 있는, 관계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수전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 http://erkenntnis.tistory.com/11




사진 출처: www.frontline.co.kr



 한국전쟁을 겪고 지금도 휴전상태에 있는 우리 나라는, 일촉측발의 위기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객관적 상황이다. 그러나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휴전상황은 이미 종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종종 '애국심'이라는 가면을 쓴 전쟁 영화가 몇 년에 한번 꼴로 등장하는 것이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 포화속으로 등,, 이러한 종류의 영화는 주로 '애국'이나 '민족 안에 우린 하나 혹은 우린 같은 인간이다' 같은 슬로건을 내세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전쟁영화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수치와 충격을 준다. 관객이나, 그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이나 모두 '전쟁'이라는 거대한 힘을 마주한다. 고지전에서 김수혁(고수 분)이 말한대로 우리는 전쟁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구별이 파괴된다. 전쟁을 다룬 영화 모두가 그렇고, 고지전 역시도 그랬다. 무수히 쌓인 시체들, 폭격에 쓰러지는 익명의 사람들은 수를 셀 수도 없다. '어제도 오늘도 수많은 남성식이가 죽었어' 라는 말은 인간의 존엄성이, 생명의 존엄성이 사라지게 하는 전쟁의 잔혹성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의 죽음은 안타깝고 전투마다 쓰러져가는 무수한 병사들에는 관심도 없는 우리의 이중성도 잔혹하다.
 문제는, 우리가 전쟁을 구경하면서 가지는 애도의 감정, 연민이다. 수전손택은 연민의 한계를 지적했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라고. 영화관을 나서면서부터 우리는 이미 지루해진다. 전쟁에 대해서는 냉소적이되고, 무감각해지고 마는 것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수전손택, 타인의 고통, p. 154)' 
 물론,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영화를 만들고 소비하는 것을 통해 '기억하기/상기하기'라도 하지 않으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정말이지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전쟁의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는, 전쟁의 현장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도, 사람으로서 저지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될 수 있는지도,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돌변하는지도, 전쟁터에서는 이념은 없고 오로지 생존본능만 있을 뿐이라는 것도, 모두. '머리로만' 알고 실제적으로는 모른다. 나 역시도 전쟁을 겪어본 일 없다. 아무 고통 없이 타인의 고통을 지레짐작하며 무던한 시선을 보내던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을 따름이다.
 얼마 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을 다시 읽었다. 그 안에서 이러한 구절을 발견하였다. '우리에게는 지켜야할 조국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 종결된지 채 반백년도 지나지 않은 그 시점에 이미 전쟁은, 그리고 그 전쟁에 목숨을 걸고 청춘을 바쳤던 젊은이들은 이미 없었다. 전쟁을 당하는 이들에게의 그 절박함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불사조 같은 무적의 인물들이나, 연기에 대해서는 딱히 평하고 싶지 않다. 그 밥에 그 나물 아니겠나 싶다. 그저, 언제까지 전쟁을,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소비할 것인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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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르세

    | 2011.07.30 22:27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잘보고 갑니다.즐거운 주말이 되세요

  2. 이데.

    | 2011.08.04 18:01 신고 | PERMALINK | EDIT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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