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감독 이와이 슌지 (2001 / 일본)
출연 이치하라 하야토,오시나리 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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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이 슌지의 작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러브레터' 를 대표작으로 꼽고, 또 아오이유우 주연으로 유명해진 '하나와 앨리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감성의 대표감독, 서정적이고 아련한 추억같은 사랑을 그려내는 감독.

 그러나 나에게 이와이 슌지는 그런 감독이 아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무지개여신. 이 세편의 영화를 바탕으로 나는 성장하는 청춘을 보았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성장하는 청춘에 대한 것이다.

 

 먼저 영화에 대해.

 릴리 슈슈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이와이 슌지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소설 속의 여가수, 그녀가 바로 릴리 슈슈이다.  

 소설 속의 릴리 슈슈의 팬이 된 사람들이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상, 댓글을 달고 그것을 바탕으로 감독이 시나리오를 구체화 시켜나갔다고 한다. 영화 초반에 릴리 슈슈의 팬사이트의 대화 -타이핑들- 는 실제로 이와이 슌지 감독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는 148분으로 감상하는데에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불안한 마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게다가 핸드헬드식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직접 찍는 방식)의 영상으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제 이십대 초입에 들어선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좋은 영화라고 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이야기가 불안했던 성장기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4세. 색으로 예를들면 장비색. 지금은, 잿빛이라고 한다면.>>

 

 누구에게나 어둡고 고독한 시절이 있었을테다. 철 모르고 지내기에는 자라버렸고, 세상살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모두 혼란을 겪는다. 격동하는 감정을 분출하는 방법을 몰라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시기.

 한밤에 잠이 들 때면 드넓은 우주 안에 홀로 된 외로움이 찾아든다. 그것을 사춘기라고 말하는 걸까

 

 

 <<'항상 해질녘이었다. 방이 어두컴컴해지고 공기가 둘로 분열하는 순간 ... 머리 속에서 소리가 울려퍼진다. 빛이 넘쳐난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없다. 눈치 챘을 땐 그렇게 되어있었다.' 라고 리리는 말했다. 이것은 릴리가 에테르를 각성한 때의 극히 중대한 에피소드. 투고자: 피리아>>

 

 사춘기가 어느시점에 시작되었고 어느시점까지였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순간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순간에 이뤄진다기보다는 그 불안한 시기동안에 체득한 진실들이다.

 어느 누군가는 회피하고, 어느 누군가는 항거하고, 어느 누군가는 침묵하고, 또 어느 누군가는 자멸했으리라

 

 

 호시노. 아오네코. 그는 그의 휴식처 '릴리슈슈'를 가르쳐주었던 첫사랑을 윤간시키고, 같은 학년 여학생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하고 절친했던 친구를 이지메 하는 등 약자를 괴롭히며 악날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괴로움에 절규했다. 

   

츠다.(아오이유우) 호시노에게 약점을 잡혀 원조교제를 강요당한다. 밝고 명랑한 성격을 가졌다. 카이트를 보면서 날고 싶어하고, 자유의 날개를 바라며 하늘을 향해 투신자살했다. 이로써 그녀는 해방되었을까


 

쿠노. 호시노에게 드뷔시와 릴리슈슈를 가르쳐준 첫사랑이자 유이치의 짝사랑 상대. 학교에서는 이지매를, 호시노 패거리에게는 윤간을 당하지만 머리를 밀고 등교하는 것으로 침묵한다. 어쩌면 그녀는 마음이 강한 사람


 

훔친 돈을 바다에 던져버리는 호시노. 격렬하게 요동치는 분노를 어찌할 바 모르게 되는 것은 이 때를 기준한다. 그는 항상 불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한 것을 보는 것은 그 스스로를 보는 것 같아 괴로웠고 그래서 약한 이를 혹독하게 괴롭혔지만, 그것은 필시 자해다.

 

 유이치. 리리피리아의 운영자 피리아. 중학교에 올라와서 친하게 지냈던 호시노에게 일순간 이지메를 당하기 시작한다. 쿠노를 짝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다. 릴리슈슈의 콘서트장에서 아오네코의 정체를 알게된다. 언제나 마음의 치유를 얻던 곳 릴리슈슈와, 그녀의 팬사이트. 그리고 동지 아오네코.
 
유이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호시노를 살해하였다. 그리고 다시 일상. (어쩌면 나는 그가 이미 아오네코를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준비 된 것만 같은 살인.)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는, 그 불안하고 고독하고 괴로운 영혼들의 모든 것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핸드헬드로 촬영한 이유도 그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메스꺼울 정도로 흔들리는 화면 속의 이야기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고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을만큼 혼동스럽다. 때떄로는 시선마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영상은 아름답고 아련한 색채를 가졌다. 저녁노을이 지는 그 때 같다.

그 시기를 돌아다보았을 때 우리가 받는 인상처럼.

 

  

 그리고 그들은 노래했다.

 

'지금 나의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다면 날개를 갖고 싶다

이 등에 새처럼 하얀 날개를 붙여주세요

이 넓은 하늘에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싶어요

슬픔이 없는 자유의 하늘로 날개를 펄럭펄럭이며 가고싶다'

 

문득 생각해보면, 그 잿빛시절의 나 역시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날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고 싶다, 어딘가로 날아가버리고 싶다.

무엇인가에 의해 속박 된 기분을 가졌다. 마음의 족쇄를 풀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상처일까. 마음의 상처?

 

누구에게나 그러한 감정에 사로잡혀 지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 때를 중학교라고 설정한 것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나 자신도 바로 그 때가 잿빛이었다. 견딜 수 없이 괴로워했고 이유없이 우울했고 자해하기도 했다.

 

규정지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진 때였다.

지금도 역시 정의할 수 없다.

돌아다보면 평온하게도 느껴지고, 불현듯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낫지 않을 상처  나았을지 모를 상처, 당연히 나았을 상처. 퍼지고 퍼져서, 몸이 전부, 상처를 입어버린다면?

그래도 재생하면, 그것이 '회복하는 상처' 투고자:루이-후아>>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상처는 존재. '회복하는 상처'를 듣는다.

 마음이 치유되어 간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투고자:시노부>>

 

 

아, 그렇다. 우리는 상처를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성장하고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다른 블로그에 2008년 7월 28일에 게재하였던 글을 수정, 다시 올린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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