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서양철학사 - 8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을유문화사
 

 
 일단 많은 분들이 언급하시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나온 러셀의 서양철학사들에 비해 깔끔하고 명쾌한 번역이 이 책의 최고 강점입니다. 러셀의 책을 원서로 보지 못해서 어떻다 말은 못하겠습니다만, 번역본이 이 정도면 러셀의 문장을 미루어 짐작컨데 글을 참 깔끔하게 쓰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 덕분도 있겠지만 이 서양철학사는  '쉽게' 읽힙니다. 그리고 재밌습니다.  
 제가 러셀 서양철학사에서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각 시대에 대한 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는 것인데- 물론 서양철학사를 다룬 다른 책들도 역사적 흐름을 완전이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러셀의 것은 정말 '재밌'습니다. 러셀이 바라보는 시대 해석은 흥미롭습니다. 기존의 철학책들이 빈약하게 다루고 있는 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또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제시하는 면들도 있습니다. 서양철학사를 다룬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서 본다면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철학자들은 어떤 일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그들은 각자 처한 사회 상황과 각 시대의 정치와 제도의 결과물이자, (만약 그들이 운이 좋다면) 후대 정치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신념 체계의 형성에 기여하는 원인 제공자이다. 대부분의 철학사에서 철학자는 저마다 진공 속에 있는 듯이 등장한다. (중략) 그러나 나는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 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서양철학사는 흐름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러셀은 그런 점에서, 철학자들 역시 역사의 흐름 안에 존재하는 인간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철학자들을 원인이자 결과라고 표현한 그의 문장에는 이러한 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전후의 흐름에 연계해서 철학자들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며, 순수사회사를 다룬 장들을 함께 실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서양철학사 개관을 철저히 러셀의 입장에서 했기 때문에 빠진 내용도 많고 철학자들을 분류하는 방식도 기존의 견해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언급했듯이 문화적 배경을 서술하는 데도 상당부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서양철학사를 개관하는 책 치고는 '가볍다'는 평을 듣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러셀 역시 이러한 평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서문에서 '충분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폭넓게 개괄하는 일에 있어서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납득할만한 이야기라 '이게 끝?'하고 답답한 심정이 들다가도 '아 뭐,'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평들을 보니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극찬을 받고 있던데, 필자의 주변에 서양철학 공부하신 분들은 '러셀? 그거 가지고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 한 번 보는 정도로는 괜찮긴 하겠다..' 이런 반응이 공통적이었습니다. 저도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참 즐겁게 읽었고, 내용면에서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입문서로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장, 통찰력, 나름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비판적 관점은 탁월합니다. 엄청 웃으면서 읽기도 했고, 무릎을 탁 치면서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원하신다면 아쉬움이 들 것 같습니다. 러셀의 주관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제 표현으로는 '서양철학사 전체를 혼자 발제했다.'정도로 해두겠습니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옳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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