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 8점
신경숙 지음/문학동네

 
 이 책은 유신말기 구로공단에서 일하면서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던 그의 고등학교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그는 외딴방이라 이름 붙이고 말한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 게 보였다. 구멍가게나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육교 위 또한 늘 사람으로 번잡했었건만, 왜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방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에, 우리들, 거기서 외따로이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인지.(p.47)' 그는 그 시절을 '외따로이' 떼어두고 있다. 외졌다, 외로운, 외따로이와 같은 표현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있다는 고립과 중간 지대에서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한 소외감, 내가 있을 곳으로 터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며 떠도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는 이 시절에 대해 쓰려고 시도한 일이 있으나, 문장을 다 쓰지 못하고 서둘러 말을 맺었다고 했다. '나는 그 속의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p.71)'기 때문에. '외사촌의 발랄함이나 나의 우울은 그곳에 살면서도 늘 그곳 사람들과 자신들이 다르다고 생각한 데에서 솟아나왔는지도 모른다. 벌써 나의 외사촌은 떠났고 나도 떠날 것이다.(p.331)' 언젠가 이 곳을 벗어나리라, 떠날 것이라는 확고한 마음이, 그로 하여금 마음 붙이지 못하게 한 것이리라.
 외딴방은 그 시절을 자신과 분리시킨 채 외딴 곳으로 떨어뜨려 둔 데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침묵으로 내 소녀시절을 묵살해버렸다.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나는 열다섯에서 갑자기 스물이 되어야 했다. 나의 발자국은 과거로부터 걸어나가봐도 현재로부터 걸어 들어가봐도 늘 같은 장소에서 끊겼다. …중략… 너무나 선명한 관계들 앞에서 나는 상실증에 걸린 환자처럼 행동했다. (p. 422)' 그는 가난과 추위와 아픔으로 남은 그 시절과 묶여 있는 '희재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을 가슴 속으로 묻어둠으로써 문장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결코 그 시절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임을. 자신이 묻어둔 침묵을 풀어내고 정직하게 마주해야만 외딴방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정직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껏 시치미를 떼었으니까. 내 젊음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자신은 없고 생생한 아픔만이 승해서 범한 건너뜀. 이건 소설이다, 하면서도 나는 죽을 것같이 가슴이 아팠다. …중략… 정면으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 얼른 뚜껑을 닫아버리며 나는 느꼈다. 내게는 그때가 지나간 시간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낙타의 혹처럼 나는 내 등에 그 시간들을 짊어지고 있음을, 오래도록, 어쩌면 나, 여기 머무는 동안 내내 그 시간들은 나의 현재일 것임을.(p. 71)' 이와 같은 서술은 또한 그가 과거의 시간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된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p. 15/p. 424)' 그가 외딴방에 둔 기억은 이렇게 그의 글쓰기와 맞물린다. 글쓰기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그녀였기에 ['이렇게 엎드려 뭐라고뭐라고 적어보고 있을 때만 나는 나를 알겠었어.(p. 197)'], 이제 그 과거와 마주하려면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그에게 문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꿈이었고, 의지할 곳이었다. 그러니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을 마주하려면 문학 바깥을 말해야하고, 꿈을 꾸려면 문학 안에 있어야 하니까.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그는 문학 바깥과 문학 안에서 갈팡질팡 한다. 머뭇거리고, 주저한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현실인가 가상인가. 문학 바깥인가 문학 안인가.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중략…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중략… 그만큼 삶은 다양한 거 아니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p. 67)' 그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자꾸만 주변을 서성이기만 한다. 문학이 삶과는 따로 된 것이라 변명하며 문장을 외면하는 스스로를 달랜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 결국은 문학 바깥에 머물 때에서야 진실로 문학을 할 수 있음을. '나는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 해. …중략… 문학 바깥에 머무르라구? 날 보고 하는 소리야? (p.197)'
'나를 가엾이 여기지 마. 네 가슴속에서 오래 살았잖아. (p. 404)' 그리고 그 때의 응어리진 가슴 속의 회한을 풀어내면서 그는 글쓰기에 대해, 문학이 가지는 위치에 대해 답을 내린다. '마음을 열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지난 이야기의 열쇠는 내 손에 쥐어진 게 아니라 너의 손에 쥐어져 있어. 네가 만났던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퍼뜨리렴. 그 사람들의 진실이 너를 변화시킬 거야.(p. 404)' 불시에 솟아 올라 그녀를 아프게 하곤 했던 고통의 기억, '우물 속으로 집어던져버렸던 쇠스랑'은 끌어올려지고, 마침내 회오리져 사라진다.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와 매우 비슷하다. 아픔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외면하려고 하면서도 그 시절에 대해 향수하는 것 말이다. 자신과의 화해는 이토록 서로를 애증하면서야 가능한가보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해 죄책을 가졌던 일이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작가가 쓴 '나'처럼 그 사람의 죽음에 직접적 행동으로 관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를 미워했다. 미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의 미움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처럼 괴로워했다. 5년 동안을 내내. 뇌사 판정을 받기 전 찾아간 중환자실에서 부끄러움 때문에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지 못했던 것이, 그의 죽음을 한편 반기고 있었다는 것이 나의 수치였다. 마지막 입관을 위해 못 박는 소리가 나에게는 유죄선고처럼 들렸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라고. 후에 마주한 그의 진실은 부당한 죄책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는 하였지만 여전히 이 기억은 나에게 고통으로 남았다.
 이 일을 시작으로 그 후 시절은 나에게 잿빛이었다. 내가 딛고 있던 터전이 발밑에서부터 무너져내렸다. 가까운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은 그녀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사람이 스스로를 버리고, 나를 버리고, 우리를 버렸다. 현장은 참혹했다. 알코올과 피비린내가 뒤섞인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그것은 나에게 슬픔과 절망의 냄새로 그리고 죽음의 무게로 기억되었다. 태어남을 부정당했다고 생각했다. 허허벌판에 홀로 서서 세찬 바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 세상에 나만 홀로된 듯 처절하게 괴로워했다. 규정지을 수 없는 마음을 지녔다. 때문에 나는 외딴방의 '나'처럼 그 시간들을 공백으로 비워둔 채 단번에 스물 하나가 되고, 때로는 열 다섯이 되곤 하였다.(p. 422)
 스물 하나, 스물 둘이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자전적 서술에 불과했지만 글을 쓰고서야 나를 끄집어내어 살필 수 있었다. '이렇게 엎드려 뭐라고뭐라고 적어보고 있을 때만 나는 나를 알겠었어.(p. 197)' 그 이야기는 나의 것이기도 했다. 글 안에서는 자유로웠다. 외면해왔던 비겁과 수치와 불온의 시절과 비로소 화해할 수 있었다.   
 나의 글을 자신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나는 나의 문장을 소중히 여긴다. 그것이 나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씩 날을 새며 읽었던 책이 나를 잊게 해준다면 글쓰기는 나를 알게 해주었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답을 내려본다.

20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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