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 6점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
 

 '대중 문화의 퍼스트레이디'부터 시작해 숱한 별명을 지닌 수전 손택은 언제나 지성계에 폭탄을 던지는 인물이었다.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에 대해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미국 정부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기도 했던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은 그가 먼저 출판한 「사진에 대하여」의 연계성 하에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바는 다음으로 요약된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p. 13)
 "이 책은 스펙터클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저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p.14)

 사진에 대한 내용만 생각하면 이 책은 진부하다는 평을 받을 법도 하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굳이 논의하지 않아도 될만큼 사람들이 사진 언어를 친숙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어렵다고 느낄 이유는 없다. 다만 수많은 사진자료를 제시하고 그 사진의 배경이나 정황을 설명하는데다 생소한 전쟁 이야기까지 덧붙이다보니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서술이 길고, 쓰잘데기없는 역자주가 너무 많아서 읽는 호흡이 떨어지는 것뿐이다. 읽다가 자신의 소양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자괴감에 빠지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 언뜻봐서는 장황하기만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파악이 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정독하고 다시 훑어보니 그의 논증은 명료하다. 서문에 밝힌 바의 것을 자기 나름의 일관성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서두에서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인용하면서 전쟁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와 '그들(전쟁의 고통을 겪는이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전쟁사진을 두고 'we'와 'they'를 구분하는 것의 전제가 가지는 의미를 꼬집는다. '당면의 문제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p. 23) '이 충격적인 사진들을 보고 있는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라는 말은 약소국이나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국가 없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열한 전쟁에 명목상 관심을 보이는 척하는 사람들(훨씬 더 수가 많은 유권자들)만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pp. 23-24)
 그러니까 이미 전쟁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는 '그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실질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말이다. 이 '우리'는 전쟁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감정을 가지는가/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가져야만 하는가? 
 그는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의 공포를 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p. 63)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리 이편에는 포르노그라피적 성격, 즉 관음의 심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쟁 사진에 있어서 특히, 사람들은 다음의 것을 기대한다. 1.실제로 발생한 죽음의 '우연한' 포착 2.가해자들의 잔인성과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그러나 이 가해자는 '전쟁'이라는 이름 뒤에 숨고 사진을 보는 주체로 하여금 거대한 어떤 힘 앞에 무기력으로 굴복하게 한다.) 3.피해자들의 무기력이 드러날 것(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똑같은 무기력을-자신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절감하는- 느끼도록 할 것) 수전은 다양한 각도에서 고통과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을 파헤친다. 전쟁 사진은 익명의 희생자를 객체로 한다. 전쟁은, 아니 전쟁 사진은 하나의 개인, 인간으로서의 구별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피사체가 우리에게 더욱 더 친숙할수록, 사진작가는 훨씬 더 신중해지는 법이다.'(p. 98) 수전은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p. 112) 폭력의 희생자들의 사진(주로 처참하게 찢기고 파괴된 육체의)을 전시하여 많은 이들이 보도록 하는 것을 전쟁이나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기' 혹은 '상기하기' 위해-인간의 본성에는 '악'이라는 거대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위해- 필요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하기' 혹은 '상기하기'라는 개념은 흥미롭다. 애도의 표현, 즉 연민의 감정을 가진 이러한 행위로 할 도리를 다 한 것이라고 여기는 풍토를 지적하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다. '아마도 사람들은 사색보다는 기억 자체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듯하다.'(p.168) 
 때문에 연민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서두에서부터 이끌어온 그의 논증은 연민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기에 이른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정작 문제는 이렇다. 이제 막 샘솟은 이런 감정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그런데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들'(그런데 '그들'은 또 누구인가)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하고 냉소적이 되며, 무감각해지는 것이다.(p. 153)'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p. 154)'

 수전은 주장한다. '사진이 질문을 던지는 것 이상의 행동을 말해줄 수 없는 것은 당연'(p.170)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문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한편, 현실이 스펙터클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중매체의 과다한 이미지들에 노출된 나머지, 실제현실에 무감각해졌다고 바라보는 시각에 수전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대량 생산 이미지를 우려하는 이유는 현실감각, 즉 현실의 위신을 실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쟁의 문제에 있어서, 결코 그 위신이 실추될 수 없는 현실도 있다는 점을 그는 분명히 한다.

 그의 결론은 분명하다. 우리는 결코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없다.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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